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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사전] ⓘ

입력
2017.02.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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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아이(i)를 원으로 두른 것으로, 유니코드 24D8의 부호다. 유니코드란 컴퓨터 상에서 문자 및 부호를 표기하기 위한 산업적 표준 기호 체계다. ‘24D8’은 16진법 숫자인데 10진법으로 바꾸면 ‘9432’가 된다. 구글의 크롬을 이용하는 경우, 네이버와 다음의 첫 화면 주소 앞에는 ⓘ가 붙어 나타난다.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그리고 보안업체 안랩도 마찬가지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에서라면 이 주소들 앞에 ‘http://’가 나타나는데 크롬에서는 이게 없어진 대신에 ⓘ가 붙어 있는 것이다.

크롬은 제멋대로 모든 사이트를 ‘안전함’ ‘정보 또는 안전하지 않음’ ‘안전하지 않음 또는 위험’의 세 종류로 나누어 표시한다. 크롬은 모든 사이트 주소 앞에 세 종류의 이미지를 붙여 놓고 있다. ‘안전함(Secure)’으로 분류된 사이트 주소 앞에는 초록색 열쇠 이미지를, ‘정보 또는 안전하지 않음(Info or Not secure)’ 앞에는 ⓘ 이미지를, ‘안전하지 않음 또는 위험(Not secure or Dangerous)’ 앞에는 빨강 바탕의 세모꼴 안에 흰색 느낌표가 들어 있는 이미지를 붙여 놓고 있다.

우리가 컴퓨터로 인터넷을 이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는 기본적 약속들이 필요하다. 이 약속들의 묶음을 인터넷 프로토콜(통신 규약)이라고 하는데 인터넷 프로토콜에는 맨 아래에 물리적이고 논리적인 수준의 연결 계층이 있고, 맨 위에 응용 계층이 있다. 이더넷, 무선넷 등은 맨 아래 계층에 속하고 텔넷, FTP, HTTP, 고퍼 등은 응용 계층에 속한다. 응용 계층 아래에 전송 계층이 있는데, 크롬이 행하고 있는 ‘안전함’ ‘안전하지 않음’의 분류는 전송 계층과 관련되어 있다.

이상의 설명은 기술적이라서 어렵고 실은 나도 모르면서 아는 척 떠드는 것일 뿐이다. 아무튼, 프로토콜이란 말은 외교 분야에서도 의례, 의전, 의정서 등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국가 원수가 외국을 방문해서 벌이는 국가 간 외교 활동에도 여러 수준의 프로토콜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느냐 아니면 기차를 타고 가느냐(과거 김정일의 중국 방문처럼), 방문의 종류가 국빈 방문이냐 공식 방문이냐 실무 방문이냐, 공식 회담이냐 비공식 간담이냐 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 수준의 프로토콜이 있다. 인터넷 프로토콜의 계층이라는 것도 바로 이렇게 다양한 수준의 외교적 프로토콜의 계층에 상응한다.

https 방식은 인터넷 프로토콜의 전송 계층에서 SSL/TLS이라는 보안 표준을 사용한다. 크롬은 기존의 http 방식을 쓰는 인터넷 사이트를 ‘안전하지 않음’으로 분류한다. 외교와 비교한다면, 외교 문서 등을 외교 행낭(최순실의 언니가 거액을 외국으로 빼돌렸을 때 이용했다고들 하는)에 넣어서 보내느냐 아니면 그냥 외교관이 가방에 넣어서 가져가느냐의 차이일 거라고 나는 이해한다.

아무튼 ‘https’가 기존의 ‘http’보다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크롬이 제멋대로 이러한 차이에 낙인을 찍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https 방식을 이용하면 보안성은 뛰어나지만 그 대신에 처리 속도가 떨어진다. 인증기관의 기술 인증서를 사서 적용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고 한다. 속도 저하 때문에 네이버와 다음은 첫 화면은 기존처럼 http 방식을 쓰고, 로그인 화면에서만 https 방식을 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안전, 속도, 비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밤 늦게 집에 올 때, 전철 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올 수도 있고, 아니면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올 수도 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집까지 걸어오는 사람의 이마 위에 구글이 ⓘ 낙인을 찍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세돌과의 대결에서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일부러 한 판을 져주었다는 소문이 있다.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구글은 글로벌한 독점 자본이다. 글로벌한 독점 자본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나쁜 짓을 벌여 왔는지 우리는 잘 안다. 나라면, 인터넷 주소를 제멋대로 분류하기보다는 트럼프의 ‘마빡’에 ⓘ나 빨강 세모를 붙였을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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