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5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정말 이대론 안 된다’ 생각했던 때가.
“스튜어디스 출신 여사장, 밤마다 오피스텔에서… 충격”.
아무리 닷컴 기사라지만 국내 1위 경제신문 사이트가 이런 제목을 네이버 톱으로 내걸다니. 민망한 제목을 클릭하면 나오는 기사는 비행 승무원 경력이 있는 중소기업 사장을 인터뷰한 지극히 평범한 기사로, “워낙 바빠서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매일 야근을 한다”는 내용이 한 줄 들어있었다. 이 기사에서 저 제목을 생각해 내는 엄청난 창의력.
2009~2013년 포털 네이버가 언론사닷컴에 메인 편집권을 내 줬던 ‘뉴스캐스트’ 시절의 일이다. 언론사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 때부터 본격화했지만, 사실은 주류 언론사들이 웹사이트에서 저질 기사를 쏟아내면서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렸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2013년 이른바 ‘한국일보 사태’를 겪고 나서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2014년, 회사 사정 때문에 한국일보의 새로운 웹사이트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떠올린 것은 그때 그 인터뷰 기사였다. “새출발하는 한국일보가 진정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면 낚시 기사, 어뷰징 기사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디지털 저널리즘을 통해 차별화해야 합니다.”
법정관리 중이었기 때문에 당장 한 푼의 수익이 중요한 상황이었지만 놀랍게도 경영진은 젊은 기자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해 줬다. ‘클릭, 클린! 반칙없는 뉴스 한국일보닷컴’이라는 슬로건은 이런 뜻에서 탄생했다.
당시 많은 닷컴 종사자들이 비웃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국일보닷컴의 출범은 하나의 신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일보닷컴의 심플한 디자인을 따라 한 언론사들이 생겨났고, 지난해 초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이른바 ‘어뷰징’ 기사도 감소했다.
폐쇄적이고 자존심 강한 기자사회 내부의 인식 변화도 감지된다. 좋은 기사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내보내야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것, 기사가 더 많이 확산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독자와의 ‘공감 지점’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 이제 더 이상 매체의 영향력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고 기자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 한때 그렇게 얘기를 해도 “기자는 기사로만 승부해야지 인터넷은 무슨” 하며 외면하던 이들조차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몇몇 매체의 행보를 보며 다시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이게 언제 일어났던 일인지, 진짜 있었던 일인지 의심이 가는 커뮤니티 글을 검증 없이 인턴에게 옮겨 쓰게 하는 매체,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1년 간 가동했으나 아직까지 퇴출된 매체가 없다는 점에 ‘사실상 무력화됐다’며 선정적 기사나 기사성 광고를 계속 내보내는 통신사, 카카오톡 채널을 연예기사로만 운영해 ‘설리 일보’라는 비판을 받는 중앙일간지…
미디어NOW 칼럼 마지막회를 쓰면서 한국일보닷컴을 처음 만들던 시절의 ‘초심(初心)’을 떠올리는 것도 최근의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잠시 길을 잃고 ‘숫자’ 경쟁에 내몰리면 또다시 ‘뉴스캐스트’의 진흙탕 악몽이 시작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모든 언론인 동지들에게 왜 언론인이 됐는지, 초심을 떠올려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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