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 일에 가담한 인물들이 줄줄이 구치소로 향하면서 이들이 검찰조사 때마다 입고 나오는 수의(囚衣)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6일 남부구치소로 이감된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나 정호성(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그동안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나와 새삼 화제가 됐다. 거기에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 명단)’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이날 나란히 첫 재판을 받은 김기춘(7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ㆍ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사복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들의 수용자복은 왜 다 달랐던 걸까. 어떤 숨은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평상복만 18종… 수용자복의 세계
구치소나 교도소 수감자들이 한 가지 스타일의 한 가지 색으로 된, 칙칙한 옷만 입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법무부령 제858호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수용자복은 평상복, 모범수형자복, 외부통근자복, 임산부복, 환자복, 운동복 외에도 조끼 등의 보조복, 비옷까지 매우 다양하다. 평상복만 해도 계절이나 형 확정여부 등에 따라 제각기 달라 그 종류가 18종에 달한다.
평상복의 색깔은 계절과 형 확정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남자수용자의 봄·가을, 겨울 평상복 색은 세 가지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처럼 아직 법적 판결이 나지 않은 미결수는 카키색 옷을 입는다. 이후 형이 확정되면 수형자임을 뜻하는 암청회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는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피고인’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드라마에서 딸과 아내를 죽인 누명을 쓰고 수감된 박정우(지성) 검사는, 재판을 받는 도중에는 미결수이기 때문에 카키색 옷을 입고 있었으나, 사형이 확정된 뒤에는 암청회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한편, 보호감호를 선고 받고 교정시설에 수용 중인 피보호감호자는 베이지색 수용자복을 입어야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기 위해 수감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밝은 하늘색(수형자), 갈대색(미결수), 베이지색(피보호감호자)을 입는다. 여자수용자의 평상복도 봄ㆍ가을, 겨울엔 청록색(수형자), 연두색(미결수), 베이지색(피보호감호자), 여름엔 아쿠아색(수형자), 밝은 바다녹색(미결수용자), 베이지색(피보호감호자)으로 구분된다.
평상복의 스타일은 계절별로 달라진다. 겨울엔 남녀 모두 앞지퍼가 달린 점퍼형 수용자복을 걸친다. 해당 점퍼 하단에는 좌우로 겉주머니가 달려 있으며, 65g의 누비솜을 안감으로 덧댄다. 춘추복은 앞쪽에 단추 5개가 달린 셔츠형이다. 왼쪽 가슴상단에 사각형 모양의 겉주머니가 하나 달려있다. 여성 춘추복은 허리선에 곡선 봉제가 들어가 라인을 잡아준다. 하복은 춘추복에서 팔 길이만 짧아진 반소매셔츠형으로 디자인돼 있다.
모범수형자에겐 주머니 많고 더 따뜻한 옷 제공
모범생들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은 감옥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실이 바른 모범수형자에게는 차별화된 의복이 제공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복이다. 일반 수형자들의 동복 점퍼엔 누빔솜을 65g만 넣어주지만, 모범수형자들의 점퍼에는 98g을 넣어준다. 모범수형자들은 일반 수형자보다 훨씬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모범수형자의 옷은 주머니 개수도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수의는 수감자가 몸에 뭔가를 숨기지 못하도록 주머니를 최소화한다. 때문에 일반 수형자들의 춘추복과 하복 상의에는 주머니가 하나씩밖에 안 달려 있고, 그마저도 상단에 달려있어 물건이나 손을 넣기 어려운 형태로 돼있다. 하의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아예 주머니가 없다.
반면 교도관의 신뢰를 얻은 모범수형자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상ㆍ하의 양쪽에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을 수 있다. 이들은 어두운 바다녹색의 모범수형자용 모자도 쓸 수 있다. 이 모자는 뒤가 고무줄로 돼 있어 크기 조절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구치소와 교도소에는 임신했거나 출산한 여성 수감자를 배려하기 위해 엉덩이를 덮을 정도 기장의 셔츠형 임산부복도 따로 마련돼 있다. 의료거실 수용자에겐 환자복이 별도로 제공되며, 운동할 때 입는 운동복도 있다. 수용자가 겨울철에 겉옷 안에 입을 수 있도록 암청회색 조끼도 제공된다. 또 우천시 실외에서 작업하는 경우를 대비해 비옷도 준비돼 있다. 신발은 기본적으로 고무신을 지급받지만, 수감 3일 후부터 영치금 사용이 가능해 운동화를 구입할 수 있다.
조윤선, 김기춘은 왜 수의 안 입었나
그렇다면,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 최씨와는 달리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장관은 왜 사복을 입었을까. 기본적인 사실부터 말하자면, 법률 제14281호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미결수용자는 수사ㆍ재판ㆍ국정감사 또는 법률로 정하는 조사에 참석할 때에는 사복을 착용할 수 있다(제9장 82조). 사복을 입어도 위법은 아니란 뜻이다. 수의를 입으면 죄인으로 확정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통상 구치소에 수감되고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같은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데, 조 전 장관과 김 전 비서실장이 검찰 조사 때 수의를 입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은 이미 몇 차례 재판 등을 통해 혐의를 인정하거나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동정여론을 사기 위해 수의를 고수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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