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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칼럼] 규율 잡힌 시장경제, 건강한 자본주의

입력
2017.05.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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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하면 낭패 보게 시스템 짜야

시장 규율이 바로 서면 분배도 개선

대기업 스스로 시장질서 지켜야

현대 정치경제 체제의 기본 골격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서로 기질이 다르다. 1인 1표로 대변되는 민주주의는 평등에 기반하지만 효율을 추구하는 시장경제는 불평등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둘이 꼭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뒷받침되어야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하며 경제가 융성해야 민주주의가 뿌리를 깊게 내린다. 민주주의 정착에 오랜 인고가 필요한 것처럼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원칙에 대한 이해, 공정한 경쟁, 반칙에 대한 감시를 통해 건강한 생태계를 갖추어야 한다.

현실에서 접하는 시장경제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많이 다르다. 상품과 서비스, 인력과 자본이 거래되는 시장 곳곳에 담합, 부당한 영향력, 보호가 자리하고 있어 경쟁이 불완전하거나 불공정한 경우가 흔하다. 그 결과 소비자와 중소 상공인의 권익이 쉬이 침해된다. 시장을 통한 성과 배분과정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추세적인 분배 악화에 대한 각국 우려가 커지고 있다. OECD 경쟁위원회는 독과점이 불평등을 키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독과점 초과이윤의 많은 부분이 고소득 자산계층에게 귀속되고 저소득층은 높은 상품가격에 직면하기 때문이라 한다.

자본주의가 건강하려면 시장경제의 규율이 서고 건전한 경쟁이 눈에 보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대다수 서민에게 편익이 돌아가고 나라가 흥한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담합 등 반칙을 막고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 담합은 역사상 두 번째 오래된 불법 상행위라 할 정도로 공급자 간에 짜고 경쟁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자, 라면, 정유, 통신 등 많은 시장이 독과점적이며, 부동산중개업소 등 동네상권의 공동행위도 빈번하다. 반칙에 대해 관대해서 그런지 담합 건수가 많고 처벌받은 기업이 재차 담합한 사례도 있었다. 불공정 경쟁이 기생하기 쉬운 독과점이 깨지도록 진입규제를 과감히 트고 반칙하다 걸리면 낭패 보도록 유인구조를 바꿔야 한다. 과징금 부과율을 관련 매출액의 10%에서 미국(20%), EU(30%)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형사, 민사 제재와 시장을 통한 구제수단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불공정 경쟁에 대한 제재는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국제카르텔 과징금 연간 부과액이 1990년 1억불 미만에서 최근 120억불로 급증했다.

수요 측면의 독점력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큰 사안이다. 세계시장 환경이 기업간 경쟁에서 기업 네트워크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어 협력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중요하며 많은 선진국에서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관계가 수평적이다. 이들 나라에서 상생 이슈가 부각되지 않는 건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와 노블리스 오블리주 관행에 더해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높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업분야에 진출한 대기업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중소상공인의 생존기반을 침해하는 일이 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집단 지배력 억제, 우월적 지위 남용 규제 등 상생 대책은 대기업 횡포를 막고 경기장을 평평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입 규제의 경우 단기적 보호효과는 있지만 자생력을 저해하고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으므로 시장접근상 불균형과 구조적 취약성을 시정하여 이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중소 스타트업 기업의 중요성과 공정 경쟁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OECD도 글로벌화, 디지털화, 차세대 생산혁명 등 변혁의 시대에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경쟁이 불공정하고 반칙이 횡행하는 시장에서는 정부 개입이 과도해지기 쉽고 경쟁력 키우기도 어렵다. 대기업 스스로 무분별한 사업 진출과 지배력 남용을 경계하는 기업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시장에 규율이 서고 거래질서가 정상화되면 시장소득의 분배가 개선된다. 그런 일차적 기반 하에 조세와 사회안전망 등 재분배 효과가 발휘되면 우리 자본주의의 건강성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윤종원 주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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