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한국영화의 밤'은 여느 해와 다른 모습이었다. 매년 칸국제영화제 기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주최하는 ‘한국영화의 밤’은 여러 의미를 품어왔다. 해외 영화인들과 한국 영화인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자리이면서 업무를 위한 프랑스를 찾은 한국 영화인들이 잠시나마 향수를 달래는 행사였다. 최신 정보를 교환하고 안면을 트는 교류의 장으로 한국영화계의 공식적인 수장인 영진위 위원장이 주최자 역할을 하고,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함께 공동 주최자로 손님을 맞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영진위 위원장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도 한국영화의 밤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했다. 대신 '남영동 1985'(2012) '부러진 화살'(2011) 등을 연출한 노장 정지영(71) 감독이 손님 맞이에 나섰다. 최근 한국영화계에 드리운 어둠과 슬픔 탓이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을 주도한 인물로 거론되며 영화계로부터 끊임없이 퇴진 압박을 받아온 김세훈 영진위 위원장이 사의 표명을 해 그가 칸영화제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부산영화제에는 불운이 덮쳤다. 칸영화제 개막 다음날인 지난 18일 김지석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가 현지에서 갑작스레 숨지면서 김동호 부산영화제 이사장과 강수연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파티 형식의 ‘한국영화의 밤’을 주도할 수 없게 됐다.
자칫 ‘어른’ 없이 해외 영화인을 맞이하고, 한국 영화인들을 격려해야 될 상황에서 정 감독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정 감독은 지난해 영화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됐다. 평소 굳은 소신과 인자한 성품으로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아온 정 감독은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수장으로 올해 처음으로 칸영화제를 찾았다.
위원장의 부재 속에 칸에 온 영진위와 뜻밖의 비보에 통곡하는 부산영화제의 상황을 전해들은 정 감독은 “칸에서 한국영화계의 중심을 잡아주실 거목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영화제 주최자 역을 기꺼이 수락했다. 김영덕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정 조직위원장은 칸에 한국영화계의 어른 자격으로 오셨다고 보면 됩니다”고 말했다.
정 감독과 최용배 부산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결국 ‘한국영화의 밤’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손님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주최자 역할을 다했다. 최 위원장은 “정 조직위원장이 칸에서 큰 역할을 해주셨다”며 “이번에 경쟁부문에 오른 봉준호, 홍상수 등 후배 감독들의 영화도 모두 관람하시며 손수 응원의 메시지도 전하는 등 이래저래 칸의 버팀목이 돼주셨다”고 말했다.
칸=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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