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인간 상대 68승 1패
이세돌 1승이 ‘처음이자 마지막’
“말도 안 되는 수는 없다” 신드롬
“AI에 바둑 더 발전” 상생의 길로
의학ㆍ공학분야로 AI 확산 새바람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계를 떠난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첫 대결에 나선 이래 인간을 상대로 한 정식 대국 전적은 68승 1패. 이로써 이 9단은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으로 남게 됐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의 은퇴 이후에도 바둑계와 협력해 바둑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알파고를 통해 향상시킨 AI 기술을 다른 분야에 확대 적용시켜 나갈 것이란 장기적 목표도 제시했다.
알파고 바둑계 떠나도 바둑 발전 협력
세계 랭킹 1위 바둑기사 커제 9단 역시 알파고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커제 9단은 27일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국에서도 209수만에 흑 불계패했다. 지난 23일과 25일에 이은 3전 전패다. 저우루이양(周睿羊ㆍ26) 9단 등 중국 바둑 최고수 5명이 단체로 도전한 26일 상담기에서도 알파고는 승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알파고는 지난 한 주 동안 중국 저장(浙江)성 우전(烏鎭)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 대국 네 번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27일 “이번 행사가 알파고가 참가하는 마지막 바둑 대국”이라고 밝혔다. 그는 “바둑의 고향인 중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사들과 함께 한 대국들은 알파고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었다”며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하사비스 CEO는 “앞으로 알파고가 대국을 할 일은 없지만 바둑계와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딥마인드는 그간 알파고가 치른 대국 기보를 정리하고 이를 커제 9단과 함께 분석해 교육용 도구를 만들어 선보이기로 했다. 알파고가 기력 향상을 위해 알파고 자신을 상대로 뒀던 ‘셀프 대국’ 기보 50건도 공개한다. 딥마인드 측은 “이 9단과의 대국 이후 알파고는 스스로의 선생님이 돼 수백만번의 훈련 게임을 했다”며 “이 대국들은 새롭고 흥미로운 전략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딥마인드는 알파고가 이 9단과 대결 이후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연내 논문으로도 발행할 계획이다. 하사비스 CEO는 “논문을 바탕으로 개발자들이 더 강력한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더 이상 충격은 없다… 인간ㆍAI 상생의 길로
지난해 ‘알파고 충격’에 흔들렸던 바둑계는 이제 인공지능의 발전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분위기다. 김지석 9단은 “인간이 알파고를 이길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는 해도, 알파고와 대국하면 그 어떤 대국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며 “AI 덕분에 인간의 바둑이 더 발전하는 기회가 생겼다”고 반겼다. 오정아 3단은 “알파고 등장 이후 ‘이상한 수’, ‘말도 안 되는 수’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바둑을 대하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딥마인드 측도 “알파고는 단순 경쟁 상대를 넘어 바둑 기사들이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도록 영감을 주는 도구가 됐다”고 자평했다.
구글은 알파고가 가져다 준 이런 긍정적 변화를 다른 분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수년 내 의학, 공학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AI가 사람 수준의 실력을 보일 수 있도록 발전시키겠다는 얘기다. 이미 구글은 자사 데이터 센터에 AI를 적용해 냉방 전력을 40%가량 아끼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을 국가 전력망 전체에 확대하면 에너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딥마인드는 영국에서 AI로 환자의 치료와 진단 속도를 단축하는 기술도 시험하고 있다. 입원 환자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AI가 이를 판단해 의료진에게 바로 알려주는 식이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인간과 AI의 대결은 이제 관심을 끌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며 “인간이 AI와 어떻게 협업하는지를 지켜보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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