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동주(吳越同舟)란 말로 알려진 오나라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의 싸움에서 마지막 승자는 누구일까? 초나라 동맹국으로 사이가 좋았던 두 나라는 초나라와 전쟁을 치를 만큼 오나라의 힘이 세지고, 월나라가 초나라에 붙자 사이가 멀어져 앙숙관계로 바뀐다. 공격은 부차의 아버지 오왕 합려(闔廬)가 먼저 시작했다. 구천의 아버지 윤상(允常)의 상사(喪事)를 틈탄 공격이었다. 절대적으로 열세인 구천은 사형수를 3열로 세워 오나라 병사들이 다가오면 눈 앞에서 자살하는 전술로써 싸움을 이긴다.
구천이 쏜 화살에 죽게 된 합려는 “너는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일을 잊겠느냐”(<사기> ’오자서열전’)는 유언을 부차에게 남긴다. 부차는 섶나무에서 잠을 자고 오자서(伍子胥)와 백비(伯嚭)를 곁에 두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구천도 초나라 출신 문종(文種)과 범려(范蠡)를 등용해 정치를 개혁하고 국력을 길렀다. 3년의 세월이 지나자,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천이 공격을 감행했으나 회계산(會稽山)에서 포위되어 죽을 운명에 처한다. 이 때 “말을 낮추고 예물을 갖추어 그에게 보내십시오. 왕께서 스스로 볼모가 되어 그를 섬기십시오”(<사기> ’월왕구천세가’)라는 범려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부차에게 기어가 구천의 아내를 바치겠다는 말을 전하겠다는 문종 같은 신하도 곁에 있었다. 오나라 충신 오자서는 구천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부차는 구천을 용서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7년 여에 걸쳐 구천은 반찬은 한 가지만 먹고 쓰디쓴 쓸개를 맛보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오나라를 공격하려다가 신하들의 만류로 단념한다. 대사를 그르치기보다 때를 기다려 일격을 가하자는 뜻이었다. 부차는 구천의 존재가 “사람의 배 속에 병이 생긴 것”과 같다는 오자서의 근심을 끝내 외면했다.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구천은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다산정책도 핵심이었다. 임신한 가정에는 관가에서 의사를 보내주고, 사내를 낳으면 술 두 병과 개 한 마리를, 여자아이를 낳아도 술 두 병과 새끼 돼지 한 마리를 보내주었다. 쌍둥이를 낳는 가정을 더 대우하고 세 쌍둥이를 낳으면 유모까지 제공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개혁과 형벌과 부세 감면, 버려진 땅을 개간하는 등 10년의 위민정책으로 국고는 가득 차고, 백성들도 3년간 먹을 식량을 집안에 쌓아둘 정도였다. 이뿐 만이 아니었다. 구천은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부차의 눈에 미미한 존재로 보이는 위장전술을 취했다. 후한 예물로 경계심을 누그러뜨려 오만한 기운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때로는 국경지대의 오나라 농민들로부터 높은 가격으로 식량을 사들여 비축해두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부차로 하여금 간신 백비를 믿고 오자서를 내치도록 하여 결국 오자서가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東門)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라”(‘오자서열전’)라는 저주를 퍼부으며 자결하게 만드는 심리전도 펼쳤다.
겉으로는 부차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았던 구천은 결국 회계산의 치욕을 겪은 지 22년 만에 3년간의 공방전 끝에 승리한다. 목숨을 구걸하는 부차를 용서하려다가 범려가 “회계산에서의 화를 잊으셨습니까?”(‘월왕구천세가’)는 말을 들어 부차를 자결하게 만들고 백비도 주살한다. 구천은 다시 제나라와 회맹을 하고, 초나라, 송나라, 노나라와의 우호관계 구축에 성공하면서 패왕(覇王)의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정녕 어려운 일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다.”(‘월왕구천세가’)는 범려의 혹평처럼, 창업에 성공하고도 핵심 공신을 내치는 냉혈한 면모가 있었다. 범려에겐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란 말을 남기며 자의적으로 그의 곁을 떠나게 만들었고, 끝까지 곁에 있으면서 창업공신의 대가를 바라는 문종에게는 반란죄를 뒤집어 씌어 칼을 주어 자살하게 만들었다.
구천의 이런 냉혹함은 역설적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그의 자손들이 일곱 세대나 이어지면서 월나라의 국력을 천하에 과시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사마천이 “구천이야말로 정녕 현명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월왕구천세가’)라는 호평은 아무리 봐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넘치는 상황에서 체면을 구기더라도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구천의 승부근성을 떠올려 볼 만하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기에 긴 호흡으로 현재 자신의 고통이 과거에도 겪었고 미래에도 다시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견디는 것이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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