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분배규칙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통합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분배규칙에 대한 가치관을 ‘정의관’이라고 할 수 있는바,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정의관은 아래와 같다.
첫째, 분배할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도록 하면 되고, 행복의 측정은 효용(utility)으로 가능하다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가 있다. 이는 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목숨 정도는 희생시켜도 된다는, 다시 말해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도 된다는 주장까지 할 수도 있는 사상으로, 대표자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한 제러미 벤덤이다. 19세 중반 영국에서 시작되어 시대를 풍미해온 공리주의는 ‘인권이 밥 먹여 주냐?’는 구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국가의 의료비 부담은 늘어나겠지만 흡연으로 조세수입이 늘어나고 흡연자가 일찍 사망하면 의료비 등이 절약되어 국가재정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므로 금연정책을 쓰지 않는 편이 좋다는 필립 모리스사의 주장과 범죄가 발생한 경우 그 행위자를 엄벌하면 다른 사람들이 겁을 먹고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는 형벌의 ‘일반예방주의’가 그 예들이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사회가 더 많은 효용을 얻을 수 있다면 인권이나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약점이다.
둘째, 사회의 효용이나 행복 극대화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나 인권에 우선성을 두는 ‘자유주의적 정의관’이 있는데, 이는 다시 ‘자유지상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자유지상주의’는 자기소유물의 자유로운 교환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정의로운 분배라고 보는 입장으로, 그 중에는 성매매나 장기매매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유지상주의는 경제정책면에서 근래에 유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상당 부분 겹치는데, 특히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최소국가를 지향하고 있어 개인이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획득한 것을 국가가 보호할 수는 있어도 과세를 통해 재분배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 ‘자유주의’가 있는데, 칸트의 계보를 잇는 존 롤스의 정의관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자유주의는 모든 사람의 가치가 절대적이고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다수의 이익을 중시하여 사람 사이의 가치의 편차를 용인하는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한다. 한편, 자유지상주의자들과는 달리, 자유의 의미에 ‘간섭과 지배로부터의 자유’ 외에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과세를 통한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롤스는 사회의 ‘최소 수혜자’, 쉽게 말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편익이 최대화되는 조건이라면 복지정책을 통한 재분배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공동체주의’가 있다. 자유주의는 인간을 공동체와의 연고를 결한 ‘무연고적 자아’의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선(善)을 둘러싸고 개별 인간 사이의 선에 관한 의견이 일치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전제 아래, 공공적 영역에서 가치나 선에 관한 문제는 ‘선반 위에 올려 놓아야’(또는 ‘괄호로 묶어야’, bracket) 한다고 주장한다(이른바 ‘선이 없는 정의’). 하지만 공동체주의는 이와 달리, 인간은 국가라는 공동체 외에도 가족, 종교단체, 지역사회, 학교 등과 같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연고적 자아’를 가진 존재이므로, 정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공동체의 가치나 선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한다(이른바 ‘선이 있는 정의’). 공동체주의는 아들과 아인슈타인이 물에 빠졌을 때 아버지로서는 아들을 먼저 구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성매매, 장기매매, 동성혼, 낙태, 안락사, 징병제 등 다양한 정의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공동체의 가치나 선을 고려해야 하고, 분배적 정의에 있어서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연대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책임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과세를 통한 재분배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대표자이다. 하지만, 공동체주의는 특정한 시기에 다수파가 안고 있는 의견이 반드시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현실에서, 공동체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경우 그들 사이의 적대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관해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는 무결점의 정의관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정의관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선의 정의관을 얻기 위해서는 ‘국가’, ‘인간’, ‘공동체’라는 요소를 고루 참작해야 한다. 어느 한 요소에 치우친 정의관은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의를 초래할지도 모르므로 열린 마음으로 독선을 걸러내는 정의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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