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20주년땐 시진핑 등 총출동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되며 급랭
한중 수교 25주년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 측 주최 기념행사는 내내 썰렁했다. 중국이 내세운 주빈은 현직 정부 인사가 아닌 천주(陳竺)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었고, 초청인사도 김장수 주중대사를 비롯한 양국 관계자를 모두 합쳐 100여명에 불과했다. 별다른 축하공연조차 없었고 천 부위원장과 김 대사의 축사 직후 만찬에 들어가 약 1시간 30분만에 끝났다. 24일 오후 주중대사관 주최로 열리는 한국 측 기념행사에 참석할 중국 측 인사는 이날까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5년 전 수교 20주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당시 양국 정부가 공동주최한 행사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함께 외교부장,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 정계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서울에서 개최된 주한 중국대사관 주최 행사엔 한국 외교부 장관이 함께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1년여만에 최상에서 최악으로 급락한 ‘25년 지기’ 한중관계의 현주소다.
이날 중국 언론에는 지난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롯데마트의 발전기ㆍ변압기 27대를 베이징 시정부가 최근 압수해 경매할 것이란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은 롯데마트의 영업정지가 반 년 가까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수교 25주년을 앞두고 보란 듯 추가적인 보복 조치가 취해진 셈이다. 베이징시정부는 “시 전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차원의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사드 보복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중관계는 1992년 8월 24일 국교 수립 이후 지난 25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이 기간 양국 교역규모는 33배나 증가했고 인적 교류는 120배로 커졌다. 양국 관계는 1998년 ‘협력동반자’에서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를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됐다. 2015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 참석한 ‘망루외교’는 양국관계의 황금기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공식화하자 중국이 경제ㆍ문화분야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한중관계는 급전직하했다. 특히 양국 간에는 정책을 논의할 공식 협의창구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 통로조차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주중대사관 고위관계자는 “그나마 중국 측이 우리에게 배우려고 하는 세무ㆍ조달 분야 등의 실무협의 정도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드 갈등은 다소 수그러드는 듯했다.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시간을 벌면서 남북관계를 회복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미중 양국을 설득하겠다는 구상에 대해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배치를 전격 결정하면서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한국은 현실적인 북핵 위협에 대비하는 ‘임시’ 조치임을 강조했지만 중국은 전면배치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강력 반발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양국 간 신뢰가 깨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뒤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 지렛대를 갖는 것”이라며 “북핵과 사드 문제 모두 한반도 주변국의 이해가 얽혀 있는 만큼 중한관계 회복은 남북ㆍ북미관계가 얼마나 호전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조언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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