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셰일 가스 생산 증가
에너지 전장, 아메리카 대륙으로
오일 머니로 패권 지켜온 사우디
시장 뺏길 우려에 감산 딜레마
왕실 쿠데타ㆍ카타르와 단교…
내외로 흔들리는 ‘중동의 맹주’
피크오일 이론(peak oil theory)에 따르면 가까운 장래 원유생산 능력은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조만간 세계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달해 유가가 크게 오르고, 그 후 석유광구가 메마르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로써 18세기 이래 화석연료를 에너지 체계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산업혁명 시대의 종언이 마침내 도래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원유생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은 세계 시장에서 자신들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펴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생산량을 줄이고, 유가가 상승하면 생산량을 늘리는 건 아주 고전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이 늘면서 딜레마 상황에 직면해 있다.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감산을 하면 다른 나라에 시장 점유율을 뺏기고,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려고 생산을 늘리면 가격이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시장의 패권 장악을 둘러싸고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알리 알 나이미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장관은 이와 관련 “생산량을 줄이면 우리의 시장 점유율은 어떻게 되겠나. 가격이 올라가면서 러시아, 브라질, 미국 등 셰일 가스 생산국들이 우리의 시장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수년 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이 2020년에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며, 2030년에는 캐나다와 함께 석유 순수 수출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파장을 불러왔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2010년 하루 550만 배럴이던 미국 원유생산량은 지난해 초 920만 배럴로 증가했다. 수압 파쇄공법(미국), 역청탄 개발(캐나다), 심해저 시추(브라질) 등 혁신적인 신기술로 지하에 매장된 풍부한 자원을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속화된 셰일 가스 생산에 힘입어 미국 에너지 산업에는 신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석유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에너지 전쟁’의 각축장은 더 이상 중동이 아닌 캐나다 앨버타로부터 미국의 노스다코타주(셰일 가스 산지), 텍사스를 거쳐 브라질의 연안 등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 가고 있다. 화석연료의 고갈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브렌트유 가격은 2014년 배럴당 114달러에서 2015년 55달러로, 2016년에는 36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원론적으로 세계 원유시장의 과포화상태 속 미국과 캐나다, 이라크의 원유 공급과잉이 원유가격의 하락을 이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저유가 전략은 큰 위험부담을 갖고 있다. 사우디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체 수출 중 석유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85%나 되는 사우디는 유가하락이 지속될수록 왕실 재정이 부담을 받게 되며, 이는 또 곧바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지급금과 보조금 등에 위협을 줄 수 있다. 올 들어 감산을 시작한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물론 사우디는 그간 석유수출로 벌어 놓은 수천억 달러를 세계 곳곳에 투자한 상태며, 어마어마한 현금 보유고에 의지해 국민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정불변하는 것으로 보였던 사우디의 산유국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 내부에서는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발휘하던 권력체제가 약화되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6월 사우디는 갑작스럽게 카타르와의 외교단절을 선언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카타르가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라이벌인 이란의 편에서 이런저런 역내 불안 조장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사우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아라비아반도 6개 왕국을 아우르는 걸프협력이사회(GCC)는 1981년 5월 아부다비 정상회담에서 창설됐다. 걸프지역 왕국들은 아랍권 전체 석유 총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막대한 재정과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주변국(이란, 이라크, 이집트, 이스라엘 등)에 비해 군사력이 취약하고 인구가 적어 불가피하게 역내 동맹을 중심으로 상호 유대관계를 강화해야 하는 형편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수니파의 맹주로 자리해온 사우디의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오만과 카타르가 리야드(사우디)의 야욕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면서 틈이 벌어진 것이 급기야 외교단절 사태까지 이르렀다. 6월 왕위계승 1순위였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폐위하고 부왕세자였던 31살의 젊은 무함마드 빈 살만을 왕위계승 서열 1위로 끌어 올린 사우디의 ‘왕실 쿠데타’ 역시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일련의 사건들은 역내에서 종교적, 정치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리야드의 야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동안 석유라는 ‘신의 은총’에 힘입어 아랍지역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사우디의 황금기는 막을 내리는 듯하다.
최창모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ㆍ중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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