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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칼럼] 박근혜 시대의 부끄러운 용어, 당청관계

입력
2017.09.0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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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배제한 청와대 주도 국정운영 한계

'당정관계' 변질된 퇴행적 통치관행 온존

대통령은 연주자 아닌 지휘자, 보폭 커야

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을 구멍가게 운영하듯이 국정운영을 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 각 사의 CEO를 모두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회장이 측근 몇 명만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그 큰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박근혜 정부에서 정부는 없었다. 여기서의 정부는 물론 행정부를 뜻한다. 각 부의 장관은 아무 존재감이 없어서 심지어는 북한의 장관급은 알아도 남한의 장관은 누가 누군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로 각 부처 인사도 청와대가 개입했으니 모든 정부 조직은 겉돌기 일쑤였다. 이전 칼럼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청와대의 부처 인사 개입은 명백히 위헌이라는 게 필자의 소신이다. 주권의 주체인 국민은 대통령 등에게 권력을 위임할 때 법을 통해서 위임하할 뿐, 백지위임을 하지 않는다. 청와대에 인사수석비서관을 두고 각 부처의 인사권을 좌지우지한 것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노무현 참여정부 시대 때부터 새롭게 시작된 퇴행적 통치관행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행정 각부의 존재감이 떨어지다 보니 새롭게 등장한 용어가 바로 ‘당청관계’다. 그 이전에는 이런 표현 자체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당정관계'라는 용어를 썼고 가끔 '당정청'관계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장관은 영어로 Minister라고 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Secretary라고 한다. 즉 대통령에 대하여 국정 각 분야의 비서장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럼 청와대의 비서관들은 무엇인가. 대통령과 각 부처장과의 연락관이다. 미국을 봐도 대통령은 주로 각 부처의 장관들과 일한다. 백악관 비서들과 일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선진국에서 당청관계라는 말은 존재할 수도 없는 해괴망칙한 용어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들은 아무런 의식 없이 이 말을 수시로 쓰고 있다. 여당이 장관은 경시하고 청와대의 연락관들과 일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당청관계라는 용어가 언론 등에서 남발되고 있다. 언어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지금의 현실이 이전의 정부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벌써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메시지 과잉이니, 만기친람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몰카 단속을 더 철저히 하라’는 지시까지 하는 실정이다. 물론 인수위 없이 출범한데다 취임 100일이 지난 최근에서야 내각 구성을 끝낸 만큼 대통령 독주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지, 연주자가 아니다. 대통령이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눈치만 보다가 나중에는 시키는 일이나 할 것이다. 연주자들이 무기력해지면 그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원맨 밴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FC 바르셀로나가 강팀인 것은 팀 내에 스타플레이어가 많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강한 내각이 되려면 내각 내에 스타플레이어 장관이 즐비해야 한다. 대통령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적소에 적재의 인사를 배치하여 믿고 일을 맡기되 막히거나 충돌하는 일이 생기면 뚫어주고 풀어주는 것이 대통령의 할 일이다. 대통령은 가급적 일을 줄이고 많은 얘기를 들으며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고, 여유있는 몸과 마음을 유지하면서 명찰과 사색으로 시대의 통찰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명암이 있고, 무슨 일이든 제대로 된 판단을 하려면 양쪽 아니 모든 쪽의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 관료들은 몸이 꿈뜨고 매사에 소극적인 단점이 있지만, 균형감각을 찾는 장점이 있다. 이 정부 들어서 쏟아진 정책의 상당수는 많은 문제점과 부작용을 안고 있다. 그 정책들은 대부분 소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청와대가 발표한 것이다. 충분히 걸러지지 않은 설익은 정책이란 뜻이다. 노파심인지 몰라도 이런 일이 계속되어선 안된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 이전에, 훗날 국민이 그 폐해를 다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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