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리처드 도킨스 등 지음ㆍ김명주 옮김
바다출판사 발행ㆍ336쪽ㆍ7,500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때문에 촉발된 ‘창조과학’ 논란에서 가장 희극적인 장면은 그가 내놓은 “존중한다”는 발언이다. “존중”이란 표현은, 얼핏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을 인정한다는, 몹시 다정다감하며 신중하게 비쳐지는 단어다. 하지만 과학이 창조과학을 존중할 이유도, 과학이 창조과학에게 존중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유사역사학은 역사학이 아니듯,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어서다. 정해진 결론에 맞춰 모든 걸 짜맞추는 건 대개 과학이 아니라 위조, 조작, 날조라 불린다.
과학잡지 ‘스켑틱’을 내는 바다출판사로서도 ‘존중’ 발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게다. 해서 5년 전 내놓은 이 책을, 5년 만에 7,500원이라는 특별보급가로 다시 내놨다. 뒤집어보면 황우석처럼, 박성진의 등장 또한 축복일지 모르겠다. 인간 난자를 이용한 기술에 이어, 이번엔 창조과학의 위험성을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과학책 편집자로 유명한 존 브록만이 대니얼 데닛,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리사 랜들 같은 일급 과학자들 16명에게 받은 글을 모았다. 툭하면 ‘미싱 링크(Missing Link)’ 운운하며 창조과학, 혹은 지적설계론을 부르짖는 보수 기독교계 일각의 주장이 왜 헛소리에 불과한지 조목조목 비판해뒀다. 물론, 그렇다면 중고등학생에서 진화론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제안도 함께 담았다.
과학자들의 글도 좋지만, 이 책의 가치는 뭐니뭐니해도 부록으로 실린 2005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연방 지방법원의 판결문이다. 당시 미국 보수 기독교계는 정교분리 원칙을 깨고 고등학생들에게 지적설계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요점은 지적설계론도 과학적 주장이니 진화론처럼 똑같은 과학으로 “존중”을 받아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건 곧 경쟁적 두 이론을 학생들에게 똑같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건을 맡은 조지 존스 판사는, 공화당이 임명한 판사였음에도 지적 설계론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양쪽 주장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판결문에 이렇게 써뒀다. “우리는 지적 설계가 과학적 조사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 본다. 이 전략은 좋게 봐도 부정직한 것이며, 나쁘게 말하자면 유언비어다.” “지적 설계가 흥미로운 신학 논증이긴 하지만 과학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꾸짖기도 했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남들 앞에서 확고하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사람들이 지적 설계 정책 뒤에 진짜 목적을 감추기 위해 거듭된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론은 이랬다. “어떤 학교에서도 지적 설계 정책을 유지하지 말 것, 교사들에게 진화론을 중상하고 헐뜯을 것을 요구하지 말 것, 교사들에게 지적 설계라는 종교적인 대안 이론을 언급하라고 요구하지 말 것을 명령하려 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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