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기화로 청소년 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이 거세다. ‘학교폭력’에 대한 엄벌주의 여론이 2011년 12월 발생한 대구 K군 사건 이후 최고조로 올랐고, 소년법 폐지라는 극약처방을 통해서라도 폭력을 근절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드세다. 하지만 이러한 극약처방이 효과를 보려면 사건의 결과만 보아서는 안 되고, 이면에 있는 원인까지 심도 있게 살펴야 한다.
이번 사건과 K군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다르다. 하나는, K군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반 학교의 학생들이었는데 비해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은 학교 부적응으로 인해 대안학교에 다녀야 했던 학생들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K군 사건은 자살이라는 피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반면에 이번 사건은 비행의 잔혹성에 국민들이 치를 떨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번 사건은 일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내몰려진 학생들이 저지른 잔혹한 폭력이라는 것이 그 특징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학교폭력이 아닌 것이다.
학교 안에서는 이번 사건처럼 잔혹한 폭력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그곳에는 부모와 교사라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다. 진짜 심각한 것은 학교 밖 아이들이다. 그럼 왜 이 아이들이 일반인의 상식을 허물어버리는 잔혹한 폭력을 만들어내는 걸까. 그 답은 두 가지 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정신심리적인 점이다. 청소년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은 단순하다. 맹수들의 세계에서처럼 힘겨루기 차원에서 폭력이 발생하는가 하면, 욕설이나 뒷담을 하였다는 이유로, 연인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결국 청소년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관계에 있다. 학교 밖 아이들이 관계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외로움이다.
가정에서 방치되거나 버려진 아이들은 외로움을 심하게 탄다. 학교에서도 학업에 매진하는 소위 ‘주류’ 그룹에 속하지 못하면서 소외감은 증폭된다. 그러다 문제를 일으키기라도 하면 위기학생들이 가는 대안학교로 밀려나거나 아예 학교를 그만두기도 하지만, 이럴수록 함께 할 친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외로움은 더해 간다. 이를 달래기 위해 친구를 찾아 나서지만 만나는 아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다. 겨우 정 붙일 관계를 찾았지만 오히려 위험한 관계를 맺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아이들은 자존감도 낮고, 가정ㆍ학교ㆍ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는 생각에 분노치도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겨우 이루어낸 관계를 비집고 들어와 방해하는 것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한다. 이 관계마저 빼앗긴다면 완전한 외톨이가 되고, 그렇게 되면 무리에 소속된 아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떻게든 관계를 지켜내려고 발버둥 친다. 어떤 남자아이들은 이러한 심리상태를 악용하여 자신에게 매달리는 여자아이에게 원조교제를 시켜 생활하기도 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과도한 분노를 표출하고, 인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까지 결핍되기라도 하면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다음으로, 구조적인 점이다. K군 사건 이후 학교폭력에 대해 엄정한 태세가 마련되었고, 이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학교폭력에 대해 엄벌주의를 취하는 이상 풍선효과로 인해 학교 밖 아이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고위험군의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두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만드는 것과 같다. 특히, 이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모이게 되는 대안학교나 공원 등 아이들의 아지트는 매우 높은 위험성을 띠게 되고, 법의 사각지대인 현대판 ‘게토’가 만들어진다. 학교폭력이 줄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동안 학교 밖 아이들은 심각한 학교폭력에 노출되고 있었다. 근원적인 해결이 아니라 학교와 학생들의 보호를 핑계 삼은 악순환이었던 셈이다.
결국 위기청소년들의 정신심리상태와 위험한 환경이 결합되어 잔혹한 폭력으로 발전한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따라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정신심리상태의 회복과 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것은 가족관계의 회복이다. 가족이 해체된 아이들에 대해서는 사회공동체가 나서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아이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엄중한 비난이 행해져야 하고, 아이들을 방치하는 보호자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 책임을 물려야 한다. 학교에서는 위기 학생들을 품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인권’을 핑계 삼아 ‘보호’를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인권은 인권이고 보호는 보호다. 게토의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늦은 밤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은 보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하여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가족과 사회공동체의 회복이 또 다른 사건의 발생을 막는 지름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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