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상이 세상을 뒤흔들 수, 바꿀 수 있을까요. 그 유명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내놓으면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세상을 움직이고 바꾸는 건 결국 사상”이라 했다지만 말입니다. 가령, 미셸 푸코의 철학서들은 전 세계적으로 2만명에게 박사학위를 선사하면서 더 어려운 글들만 양산하게 한 건 아닐까요. 흔들라는 세상은 안 흔들고, 내 나쁜 머리나 뒤흔들었던 건 아닐까요.
‘세상을 뒤흔든 사상’은 사회학자 김호기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발간된 현대의 명저 가운데 읽어 볼 만한 것 40권을 따로 뽑은 책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한정 지은 건 그 이전 고전들에 대한 얘기들은 넘쳐 날뿐더러, 지금 이 시대의 골격이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졌다 보기 때문입니다.
밥상은 풍성합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1949년작 조지 오웰의 ‘1984’에서부터 2013년 화제작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까지 포괄합니다.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E. P.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부터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법, 입법 그리고 자유’까지, ‘좌우’도 넘나듭니다. 여기저기서 욕 먹느라 바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같은 페미니즘, 자연과학 분야도 포함시켜 뒀습니다.
이런 다양함보다 더 빛나는 게 있습니다. 소개하는 책의 주제에 대한 압축적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만한 꽤 괜찮은 번역본, 그리고 비슷한 주제를 논의하는 국내외 저자의 다른 읽을거리까지 연결해서 소개해 뒀다는 점입니다. 가령 이매뉴엘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체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백낙청이 제기한 분단체제론, 그리고 분단체제가 체제로서 성립 가능한가를 따져 물은 반론을 곁들여 뒀습니다.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서는 최장집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거론해 뒀습니다. 애국이니, 조국이니 하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절규했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다루면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한 재일철학자 강상중을 등판시키는 식입니다.
이런 유기적 연결 때문에 ‘서구 지성사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비교적 흔한 게 아닌가’ 싶었던 오해는 해소됩니다. 다만 일간지 연재물을 모으다 보니 아무래도 간략한 소개 위주로 흘러간 점은 아쉽습니다. 요령 있는 소개라 소개 자체에 큰 흠결이 있다기보다 저자 김호기 본인의 목소리가 좀 적게 느껴지는 부분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자, 이제 질문은 원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이런 사상들은 정말 세상을 뒤흔들었을까요. 뒤흔들었다면, 그건 손에 먹물 좀 묻힌 자들의 흔하디 흔한 자기만족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저자는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서문에서 이런 문장을 인용해 뒀습니다. “인간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성을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이 유의미성을 경험하려면 의미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최소한 사상은 그것을 도와줍니다.
아니, 아무래도 이것 또한 너무 우아하게 들리는군요. 그럼 이렇게 바꿉시다. 사상은 적어도 앞뒤 안 맞는 ‘아무말 대잔치’만큼은 내 귀와 내 입에서 내다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그것만 해도 세상은 조금씩 흔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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