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사원 매년 40명씩 1인당 1억 들여 美 연수ㆍ파견
회사 핵심 인재로 키우고, 임금ㆍ복지 높여 직원 헌신 얻어내
업무 몰입도 높아지면서 특허도 늘어
지난 12일 낮 경북 경산시 진량읍 아진산업 4층 사장실. 기자와 마주하자마자 서중호(60) 대표가 대뜸 “낚시 좋아하냐”고 물었다. 미처 대답도 듣기 전에 “난 경영을 낚시처럼 한다. 지렁이로 붕어를 잡는 대신 고등어 미끼로 고래를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단기 이익 때문에 야박하게 구는 대신, 임금ㆍ복지후생에 과감히 투자하고 직원들의 헌신을 얻어내 혁신과 장기 성장을 얻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아진산업의 복리후생과 임금은 업계 최고수준이다. 현대ㆍ기아자동차에 자동차 차체 등을 공급하는 이 회사 고졸 초봉은 연간 4,000만원대, 대졸자는 5,000만원대다. 1년에 1인당 70만원의 여행경비가 지원된다.
고졸 사원에게는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진다. 매년 40명을 뽑아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현지공장 옆에 세운 아신USA 공장에 연수ㆍ파견 기회를 제공한다. 현지 체재비와 연수 지원금(1인당 1,000만원) 등을 감안하면 연간 1인당 1억원 가까이 투입되지만, 직원들의 높은 호응과 사기를 고려해 앞으로 더욱 늘릴 계획이다. 이 밖에도 전문학사 등록금 1,200만원, 군복무 상여금 850만원, 4년제 대학 편입 등록금 1,200만원 등 고졸 인력을 회사의 핵심 인재로 바꿔놓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서 대표가 동종업계 대비 높은 임금을 유지하고 인력 양성에 많은 투자를 하는 건 그만의 독특한 계산법 때문이다. 서 대표는 “제조업 경영자가 인건비 줄이려고 발버둥 치는 건 큰 잘못”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는 전체 지출 중 인건비 비중이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줄여봐야 경영수지에 별 도움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10% 인건비에 1%만 더 얹어줘도, 직원들은 임금이 10%나 오르는 거라 얼마나 좋아하겠으며, 또 열심히 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렇게 늘어난 비용은 어디서 메우냐”고 물었더니, “경영자가 노력해 재료비를 더 아끼고 판매처를 더 많이 개척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기자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하자, 이런 신념을 얻게 만든 계기를 들려줬다.
서 대표는 자신이 창업한 자동차 부품업체 우신을 키워, 매출 규모가 3배나 되는 지금의 아진산업을 2003년 인수했다. 그 당시 국산 프레스 장비가 고장을 자주 일으켜 애를 먹였다. 현장 직원들은 “국산 기계 성능이 원래 이렇다”며 일본제로 교체해달라고 요구했다. 교체 비용이 100억원이 넘었다. 서 대표는 “고민 끝에 열정 있는 직원 몇몇과 함께 기계에 매달려, 가동 전후 꾸준히 점검했더니 고장이 사라졌고 지금까지도 잘 돌아가고 있다”며 “그때 기계가 고장 나지 않게 하려면, 기계가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회고했다.
물론 돈만 퍼준다고 생산성이 오르는 건 아니다. ‘사람중심 경영’이 제대로 작동하는 아진의 밑바탕에는 서 대표와 부하 직원 사이의 끈끈한 신뢰와 위기 상황에서 먼저 희생하려는 솔선수범이 깔려 있다. 입사 8년 차인 임재욱(33) 총무과 안전팀 계장은 “서 대표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입사 당시 ‘나만 믿어라. 10년 후 세계 최고 회사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격려하고 업무 몰입을 주문한 서 대표 진심을 여전히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대표와 직원 사이의 신뢰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이 대표실 천장에 부착된 4대의 폐쇄회로(CC) 카메라다. 대표실 한쪽 벽에는 미국, 중국, 베트남 등 현지공장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는 화면이 설치되어 있는데 대표실을 향해서도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서 대표는 그 카메라를 가리키며 “직원들도 내가 뭘 하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내가 현장의 직원들을 지켜봐야 한다면, 내 방도 직원들에게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 대표의 솔선수범은 이뿐만이 아니다. 연 3억원 매출 회사로 시작해 1조원 매출(우진ㆍ아진산업ㆍ대우전자부품의 총 매출 기준)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위기 때마다 먼저 희생하고 직원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외환위기 당시 일감이 없어 개인 재산을 모두 담보로 잡히고 사채를 얻어 쓰는 상황에서도 직원 한 명 해고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단 한 번도 월급을 늦게 주지 않았다.
경영난에 빠진 다른 자동차 부품업체를 인수할 때마다, 100% 고용보장 약속을 지켰다. ‘전기차 혁명’을 내다보고 7년 전 전북 정읍시 대우전자부품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승승장구하던 시절 대우그룹이 자동차 전장부품 생산을 위해 세운 이 회사는 서 대표가 인수하기 전까지 두 번 연속 ‘재무적 투자자’에 인수돼 부동산과 첨단설비 등 핵심자산만 빼앗긴 채 버려진 상태였다.
서 대표는 “인수 직후 나에 대한 불신이 심했다. ‘호남 기업을 영남 기업이 인수했다’는 지역감정까지 겹쳐 더욱 그랬다”고 말했다. 회사를 잘 키우는 것 말고 다른 마음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주요 임원은 물론이고 자금ㆍ경리담당도 인수 전 사람을 그대로 기용했다. 임금도 대폭 올려주고, 직원들에게 중국 여행기회도 제공하며 안심을 시켰다. 직원의 신뢰를 얻으려는 이런 노력 덕분에 7년 전 10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400억원을 넘었다.
‘기계보다 사람에 투자’하는 원칙을 유지하면서, 이 회사는 동종업계에서 보기 드문 혁신성을 발휘하고 있다. 신뢰감을 바탕으로 직원의 업무 몰입도 높아지면서 특허 건수와 그 활용률도 함께 향상되고 있다. 2012년 15개였던 보유 특허가 지난해에는 57개로 늘었고, 직원 1인당 특허 건수도 0.04개에서 0.08개로 증가했다. 매출액에서 신제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2년 21%에서 지난해에는 43%로 높아졌다. 이 수치는 회사 경영에서 신제품 매출 비중을 가장 중요시하는 세계적 혁신 기업 미국 3M(31%)보다도 높은 것이다.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 스스로 터득한 ‘사람중심 경영’을 통해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자동차 부품회사를 이룬 것에 대해, 서 대표는 평범하지만 의미심장한 자체평가를 내렸다. 한마디로 ‘사람중심 경영’을 하게 된 특별한 배경도 없고, 인간존중 같은 거창한 경영철학은 더더욱 없었다는 것이다. 서 대표는 “남들처럼 돈을 벌려고 사업을 시작한 것인데, 다만 그 방법이 좀 달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앞으로도 통 크게 사람에게 투자하면 고래를 낚을 수 있다는 걸 계속 입증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경북 경산=조철환기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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