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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오디세이] 재벌 마님 '귀요원'

입력
2017.11.07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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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배우 이요원은 도도해 보이지만 이면에 귀여운 매력을 품고 있는 재벌가의 딸 김정혜역을 맡았다. 블리스미디어 제공
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배우 이요원은 도도해 보이지만 이면에 귀여운 매력을 품고 있는 재벌가의 딸 김정혜역을 맡았다. 블리스미디어 제공

아주머니 셋이 부조리한 세상에 복수하자는 야심 찬 목표로 ‘복자클럽’이라는 모임을 결성한다. 연쇄살인이라도 불사할 듯한 기세지만 복수 방법은 애교 수준이다. 성추행을 일삼는 고등학교 교장에게 설사약을 먹이려는 식이다. 클럽 멤버들이 심성이 워낙 여려 그마저도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멤버들 맏언니인 생선장수 홍도희(라미란)가 결연한 모임의 정체성을 고민할 정도다. “이대로 가다간 ‘복자클럽’이 아니라 그냥 친목계야.”

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속 어설픈 인물들의 중심에는 재계 순위 10위 건하그룹의 막내딸 김정혜(이요원)가 있다. 똑 부러지는 말투에 도도한 외모의 이요원은 여전히 상류층 역할이 어울리는데 김정혜는 결이 좀 다르다. 닭발과 라면 등 서민 음식을 처음 먹어보고 행복해 하는 귀여운 모습이 새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시청률 2.9%(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로 출발한 ‘부암동 복수자들’는 5회에 시청률 5.3%를 기록하는 등 안방의 환대를 받고 있다.

배우 이요원은 주로 강단 있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연기했다. 2009년 MBC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를 연기한 이후 이 같은 이미지가 자리잡았다.
배우 이요원은 주로 강단 있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연기했다. 2009년 MBC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를 연기한 이후 이 같은 이미지가 자리잡았다.

‘제2의 심은하’가 ‘센 언니’로

1998년 영화 ‘남자의 향기’로 데뷔한 이요원은 이듬해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1999)에서 발랄한 10대 아르바이트생 역을 소화하며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에서 고교 동창들 사이 가장 현실적인 인물 혜주를 연기하며 특유의 차가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스타로 자리 잡았다.

KBS2 드라마 ‘꼭지’(2000)와 ‘푸른 안개’(2001)에서는 청순함이 돋보였다.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인형 같은 매력을 뽐내 ‘제2의 심은하’라는 수식을 얻었다. 특히 ‘푸른 안개’에서 이요원은 순정한 듯하면서도 당찬 신세대를 연기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40대 중년 유부남(이경영)과 사랑에 빠지는 20대 스포츠센터 댄스 강사 신우를 맡아 이경영에 밀리지 않는 기운을 뿜어냈다.

당시 ‘푸른 안개’의 표민수 PD 표현에 따르면, 여주인공은 “불륜임에도 동정심을 끌어올 수 있는 선한 외모, 어딘가 당찬 분위기가 동시에 엿보여야”했다. 이요원은 소녀와 성숙한 여인의 이중성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빚어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요원은 성숙하고 우아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종종 말투나 행동에서 소녀 같은 감성이 나와 의외의 매력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2003년 결혼한 뒤에도 이요원의 연기 행보는 달라지지 않았다. 억척스러운 패션디자이너(SBS ‘패션70s’), 지방의대 출신 의사(SBS ‘외과의사 봉달희’) 등 자립심 강하고 강단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굳혀갔다. 2009년 MBC ‘선덕여왕’에서 10년 가까이 쌓은 그의 매력은 만개했다. 기구한 운명을 이겨내고 신라 27대 임금 선덕여왕에 오르는 덕만 공주를 연기했다. 미실을 연기한 상대 배우 고현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되진 않았지만,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조금은 무겁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연기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역사의 격류에 휘말려 비극을 맞이하는 여인(영화 ‘화려한 휴가’) 등 그는 좀 더 대담하거나 도도한 이미지의 역할에 집중했다.

tvN '부암동 복수자들'의 김정혜(이요원)은 우아하지만 눈치 없고 어딘가 맹한 구석도 있는 인물이다. 블리스미디어 제공
tvN '부암동 복수자들'의 김정혜(이요원)은 우아하지만 눈치 없고 어딘가 맹한 구석도 있는 인물이다. 블리스미디어 제공

단단하고 도도하고 담대한 이미지의 성

이요원이 화면 밖에서도 담대한 기질이 있다는 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촬영 당시 면허를 딴 직후 호기심에 동료가 새로 구매한 마티즈의 핸들을 잡았다가 접촉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요원의 성숙한 이미지는 ‘부암동 복수자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요원은 ‘부암동 복수자들’의 동료 배우인 명세빈의 아역을 연기하며 데뷔했다. 두 사람 사이 연륜의 간극이 있는데도 이요원은 명세빈을 비슷한 또래로 보이게끔 하는 중후함을 풍긴다. ‘부암동 복수자들’의 홍보사 블리스미디어 김호은 대표는 “라미란과 명세빈, 이요원은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대화를 많이 나눈다더라”며 “이요원이 세 사람 중 막내이고, 라미란에게 ‘애교 특훈’을 받는 등 살갑게 지내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온 듯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듯, 다른 연기로 자기 영역을 거침없이 구축해온 이요원에게도 난관은 있다. 주연을 이어오고 있지만 ‘선덕여왕’ 만큼 시청률에서 큰 성과를 올린 드라마가 없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소화할 수 있는 역할도 제한적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너무 묵직한 스토리, 예쁘거나 비현실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연기력을 바탕으로 좀 더 역동적인 역할을 선보이면 시청자들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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