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XX야!”
MBC 월화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를 볼 때면 마음이 무거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톱스타 사진진(한예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언론에 대한 묘사 때문이다. 드라마 초반 사진진은 자신을 닮은 여성의 음란 동영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부인과에서 나오는 사진이 보도되면서 오해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산부인과에 입원한 친구를 병문안 했는데도 말이다.
사진진의 연예기획사 대표 장기봉(김광식)은 위기 돌파를 위해 발군의 실력(?)으로 언론을 대한다. 그는 ‘[단독]사진진, 7시간의 진실은?’이라고 보도한 기자에게 “신생 매체라도 그렇죠. 이건 정말 아니죠”라며 기자를 달래다가, “지금 당장 기사 내려주세요”라고 통사정을 한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자 “야, 이 XX야! ‘찌라시’ XX가 어디 클릭 수 좀 높여보겠다고! (중략) 이 양아치 XX!”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바로 다음 장면도 예사롭지 않다. 산부인과에 입원한 한 환자는 “안 그래도 간호사들이 ‘바빠 죽겠는데 기자들이 온종일 전화해댄다’고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던데”라고 일침을 가한다.
로맨틱코미디에서조차 언론을 대하는 시선은 곱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에 대한 싸늘한 대중의 시선이 반영된 것 같아 더 아프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언론을 냉소로 대하는 건 당연하다. 사실 확인 보다 ‘받아 적기’에 급급하고, 근거 약한 단독보도에 집착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방송사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최근 열린 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과 JTBC 예능프로그램 ‘전체관람가’의 제작발표회에선 언론에 해서는 안 될 공지가 여전히 흘러나왔다. “작품과 관련 없는 질문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공교롭게도 두 프로그램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작성된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직접 관련된 연예인들이 출연한다. ‘마녀의 법정’에는 김여진이, ‘전체관람가’엔 문소리와 김구라가 각각 나온다. 제작발표회를 주최하는 방송사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홍보가 목적인데 괜히 정치적 구설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심정은 알 만하다.
하지만 언론의 질문을 막아서는 안 된다. 민감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연예인 개인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자신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킬까 우려가 된다면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 굳이 참석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보도기능을 지닌 방송사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기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해서야 되겠는가. MBC 해직 PD인 최승호 감독은 영화 ‘공범자들’에서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방송이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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