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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 패러다임 바꾸자] “반 대항으로 흥미 유발… 체육시간이 달라졌어요”

입력
2017.11.08 15: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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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활체육전도사 변신 조혜정

배구 스타, 프로 첫 여성 감독

즐기는 스포츠로 체계적 지도

초등생들 자신감^협동심 찾아줘

양준혁, 김병지 등 스타 20명 포진

공공스포츠클럽 대표로 제2 인생

은퇴선수 지도자로 일자리 창출도

생활체육 전도사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조혜정 (사)코리아하이파이브 대표가 6일 경기 화성 동탄 중앙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본보와 인터뷰에 앞서 환하게 웃고 있다. 조 대표가 들고 있는 공은 일반 배구공과 탄력은 비슷하지만 훨씬 가볍고 부드러워 운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 두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화성=배우한 기자
생활체육 전도사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조혜정 (사)코리아하이파이브 대표가 6일 경기 화성 동탄 중앙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본보와 인터뷰에 앞서 환하게 웃고 있다. 조 대표가 들고 있는 공은 일반 배구공과 탄력은 비슷하지만 훨씬 가볍고 부드러워 운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 두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화성=배우한 기자

배구인 조혜정(64)은 ‘1호’ 수식어와 인연이 깊다.

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배구 동메달 주역이다. 한국 구기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었다. 165cm도 안 되는 작은 키의 조혜정이 상대 장신 숲을 헤집는 모습에 외신들은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1979년 이탈리아 세리에A 라이온스 베이비 앙코나에 입단해 한국 배구 선수로는 처음 해외 리그에 진출했다. 2010년에는 여자배구 GS칼텍스 사령탑에 올라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여성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다. 평생 엘리트 체육의 정점에 서 있던 조혜정은 요즘 ‘생활체육 전도사’로 변신해 새 삶을 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 선정한 공공스포츠클럽인 사단법인 코리아하이파이브 대표를 맡은 그를 6일 경기 화성 동탄중앙초등학교에서 만났다.

조 대표는 동탄중앙초와 경기 수원 광교초 체육시간에 배구를 가르친다. 웃고 떠들며 배구하는 학생들 손에 들린 공이 조금 특이했다. 만져보니 탄력은 일반 배구공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훨씬 가볍고 부드러웠다. 조 대표는 “일반 배구공은 처음 배구를 접하는 학생들이 다루기에 너무 아프다. 이탈리아에서 뛸 때 학생들이 부드러운 공으로 운동하던 게 떠올라 수소문 끝에 일본에 똑같은 공을 생산하는 업체가 있어 수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가 처음 지도할 때만 해도 학생들은 스포츠맨십, 협동심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특히 여학생들 대부분은 체육시간만 되면 방석을 들고 와 앉아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조금씩 달라졌다. 반 대항 개념을 도입했더니 금세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살아있는 체육’으로 변했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며 “폭력적인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소외됐던 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찾는 변화를 내 눈으로 직접 봤다. 체육의 소중한 가치를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치고 있는 조혜정 대표. 화성=배우한 기자
학생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치고 있는 조혜정 대표. 화성=배우한 기자

몇 년 전까지 그는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잠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프로스포츠 제1호 여성 감독이었지만 부임 첫 시즌 4승20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꼴찌를 하며 지휘봉을 내려놓았다는 열패감이 수년 째 조 대표를 괴롭혔다. 그는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더 고통스러운 건 한 번 실패하면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풍토였다”고 토로했다. 감독을 그만둔 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정상적인 곳이 하나도 없었다.

문득 30여 년 전 이탈리아 생활이 떠올랐다. 그곳 학생들은 우리나라처럼 악을 쓰며 이기기 위해 운동하지 않았다. 4교시 끝나고 점심 먹고 숙제만 하면 오후 내내 운동을 즐기던 ‘스포츠 천국’이었다. ‘한국도 언젠가 저런 시스템을 갖출 있도록 나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실천에 옮길 때라는 결심이 섰다.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이런 모델의 공공스포츠클럽 육성 정책을 편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남은 인생을 쏟기로 했다. 조 대표는 “꼭 프로 팀 우승으로만 내 실패를 만회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미소 지었다.

하이파이브코리아에는 조 대표 외에도 농구의 박찬숙(58), 야구의 양준혁(48), 축구 김병지(47), 수영 최윤희(60), 탁구 양영자(53) 등 쟁쟁한 스타 출신들이 포진돼 있고 그 아래 20여 명의 엘리트 출신 지도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은퇴 선수 출신 지도자를 채용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는 이 제도의 당초 취지와 부합한다.

그는 “엘리트 선수 출신이 생활체육에서 일하면 자존심 상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는데 요즘 많이 바뀌었다. 다음 달에 관련 세미나를 여는데 여기저기 현역 후배들이 많은 관심을 갖더라.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첫 걸음 아니겠느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화성=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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