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 함께’ 프로젝트는 몇 년간 한국 영화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한국 영화에서 처음 시도되는 1ㆍ2편 동시 촬영에 최첨단 시각효과(VFX) 기술 구현과 편당 2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제작비 문제까지,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을 영화화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높고도 높았다. ‘국가대표’(2009)로 블록버스터 연출 경험을 쌓고 ‘미스터 고’(2013)로 시각효과의 신기원을 개척한 김용화 감독은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였다.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향기 김동욱 오달수 임원희 도경수 이정재 김해숙 등 쟁쟁한 배우들도 속속 합류했다. 마동석이 등장하는 2편은 내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20일 개봉한 1편 ‘신과 함께-죄와 벌’은 망자가 7개 지옥에서 7번 재판을 받는 이야기를 그린다.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여자 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소방관 자홍(차태현) 앞에 저승차사 해원맥(주지훈)과 덕춘(김향기) 그리고 이들의 리더 강림(하정우)이 나타나 저승으로 안내한다. 1,000년 동안 의로운 망자 49명을 환생시켜 자신들 역시 인간으로 환생하기를 바라는 삼차사는 48번째 망자인 자홍이 의로운 망자라 확신하지만,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각각의 지옥을 통과하는 동안 자홍의 숨겨진 사연이 드러나면서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는다. 원통하게 죽은 자홍의 가족이 원귀가 되어 자홍의 저승길을 가로막고, 강림은 인간사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저승의 법을 어기고 이승에 내려가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
◆‘신과 함께’ 20자평 및 별점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더 꼼꼼하고 더 보편적인 김용화표 가족영화
김 감독의 영화는 테크놀로지와 휴머니즘의 변증법이다. 전자가 변수라면 후자는 상수이고, 전자가 수단이라면 후자는 목적이다. ‘미녀는 괴로워’(2006)의 특수분장, ‘국가대표’의 고난도 촬영, ‘미스터 고’의 디지털 캐릭터 그리고 ‘신과 함께-죄와 벌’이 보여주는 엄청난 분량의 컴퓨터그래픽(CG)…. 이러한 영화적 테크닉은 결국, 그것이 종종 신파적일지라도, 눈물의 감동을 위한 것이며, 그 중심엔 항상 가족의 화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과 함께-죄와 벌’은 전형적인 김용화 표 가족영화다. 달라진 건 확장성이다. 전작들에 비해 관객층은 넓어졌고, 장르 요소는 강화되었다. ‘미스터 고’가 허영만의 동명 원작과 거의 무관한 이야기라면, 이번엔 주호민의 웹툰에 좀 더 적극적으로 결합한 감독은 영화 매체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기계적 각색을 경계하면서, 상상력을 누르지 않고 비주얼을 만들어낸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지점이다. ‘역사’나 ‘사회’ 같은 거시적 테마에 강박적이었던 최근 한국 영화의 트렌드에서 벗어난 점도 인상적. 감정적 과잉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디테일을 간과하지 않는 꼼꼼함을 보여준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지옥에서 진하게 우려내는 신파의 ‘맛’
치유의 영화다. 극에서 소방관 자홍은 화마 속에서 동료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저승에서 미필적 고의 혐의로 법정에 선다. ‘구조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은유로 비치는데, ‘지나간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흘리지 마라’란 말로 용서란 화두를 던져 관객을 보듬는다.
김 감독은 괴짜 같지만 휴머니스트다. 영화 ‘국가대표’에선 스키 점프란 낯선 소재를 다루면서도 비주류 운동 선수의 성장담을 담아 냈고, ‘미스터 고’에선 뜬금없이 CG로 가상의 고릴라를 만들었지만 그 저변엔 동심을 뿌리 깊게 심었다.
신작에서도 비슷하다. 그는 저승이란 판타지 공간에서 신파를 진하게 우려낸다. 웹툰엔 없는 내용이자 정서다. 원작의 참신함을 좋아했던 독자에겐 영화의 ‘신파 뿌리기’가 영 못마땅할 수 있지만, 반대로 공감의 폭을 넓히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걸어도 걸어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서 명절에 찾아온 아들 부부를 배웅한 뒤 노부부가 자식들의 무심함을 삭이며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고 펑펑 울었던 관객에게라면.
신파가 아니라 이야기 밀도가 부족한 게 문제다. 극 후반에 ‘한 방’을 던지지만, 한 시간이 넘어가면 지루함이 밀려든다.
양승준 기자
컴퓨터그래픽이 빚어낸 황홀경
웹툰이라서 가능한 무한 상상을 스크린에서 구현한 개척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본격 판타지 장르는 한국에서 아직 무리라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부쉈다. 판타지 소재의 확장 가능성도 멋지게 증명했다. 올해 한국 영화의 소중한 성취다.
기술이 빚어낸 일곱 가지 지옥 풍경은 황홀경 자체다. 마치 만화경 안에라도 들어가 있는 듯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는 자홍의 우여곡절 많은 지옥 모험을 통해 인간사의 복잡다단함을 탐구한다. 덕목으로 여겨지는 성실함의 실체는 끝없는 노동이고, 선의는 때론 진실을 왜곡해 상처를 남기며, 의로운 희생은 남겨진 이에게는 고통이다. 권선징악이라는, 현실에선 좀처럼 이뤄지지 않아 용도 폐기된 교훈적인 세계관이 이 영화에서는 헛된 낭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영화는 권선징악을 디딤돌 삼아 용서와 화해로 나아간다. 원작에 빚을 졌으나 원작에만 기대지 않은 과감한 각색은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가족으로 수렴되는 이야기는 뜻밖의 감동과 슬픔을 안긴다. 제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이번만큼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듯싶다. 가족이라는 진부한 소재와 신파적 감성을 매번 다른 방식으로 무리 없이 설득시키는 김 감독의 뚝심과 재능이 새삼 놀랍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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