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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의 프레임] 딱 한 가지만 하기

입력
2017.12.28 13:5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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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어느 현자의 고백처럼 해 아래 새로운 후회도 별로 없다. 2017년의 끝자락에 찾아오는 아쉬움과 후회의 면면은 2016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운동할 걸, 조금 더 여행 갈 걸, 조금 더 책을 읽을 걸, 조금 더 가족과 시간을 보낼 걸, 조금 더 기부하고 봉사할 걸, 조금 더 부모님께 잘해드릴 걸, 취미 생활을 더 즐길 걸, 스마트폰을 조금 덜 쓸 걸……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해버린 것에 대한 후회, 관계에서 비롯된 후회와 시간을 잘못 써버린 데 대한 후회 등등은 화려하고 다양해 보이지만 실상 매년 해왔던 진부한 후회들이다. 신선한 후회가 하나 정도는 있을 법한데,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틀린 문제는 꼭 다시 틀리는 학생처럼, 매번 그 위치의 해저드에 볼을 빠뜨리는 아마추어 골퍼처럼, 우리는 같은 후회를 매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2018년에도 같은 후회를 하게 될지 모른다.

무한 반복되는 노동의 형벌을 감당해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무한 반복되는 후회의 멍에를 짊어진 우리 모습이 안쓰럽다. 의지가 부족했다고 책망하자니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우리는 가끔은, 아니 꽤나 자주, 굳은 의지로 내게 주어진 일들을 잘해내지 않았던가. 작은 실패는 껑충 뛰어넘고 큰 곤란을 만나서도 좌절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제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의지가 박약하다고 나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애초에 기대가 너무 컸다고 위로하자니 스스로가 너무 쪼잔해 보인다. 조금 더 운동하겠다는 것이, 조금 더 가족과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 뭐 그리 원대한 목표였다고, 스스로를 변명한단 말인가. 원래 삶은 그런 것이라고, 후회를 반복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리화하자니 개운치가 않다.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같은 문제를 계속 틀리는 학생에게 분명 이유가 있듯이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우리에게도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이유가 있다면 해결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있었다면 삶에 대한 의지가 이처럼 충만한 우리는, 왜 늘 같은 후회를 매년 반복하는 것일까?

틀린 해결책을 걸러내기 위해 매년 써왔던 오답노트에 적힌 내용들을 보니 그 자체로 훌륭하다. 우선순위를 정할 것, 의지에만 의지하지 말고 주변 환경을 바꿀 것,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것,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할 것, 이사를 가볼 것, 일기를 쓸 것 등등 흠잡을 곳이 없는 해결책들이다. 이 모든 훌륭한 해결책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우리는 지난해의 우리와 달라진 게 없고, 내년의 우리 역시 올해의 우리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기존의 발상을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적어본 올해의 오답노트이다.

‘딱 한 가지만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목표를 이루고자 했다. 우선순위를 정하자는 해결책도 이미 많은 목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너무 많은지도 모른다. 한 가지에만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내느라 여기에 잠깐, 저기에 잠깐 하는 식으로 시간을 분배하다 보니 늘 바빴지만, 해도 해도 할 일은 줄지 않고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타임 푸어’의 저자 브리지트 슐트의 표현대로, 우리에게는 시간의 파편(Time confetti)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우리 몸의 모든 의식과 감각을, 모든 시간과 관심을 딱 하나에만 쏟으면 어떨까? 2018년 한 해에 이름 하나만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 읽는 해’라고 정하고, 2018년에는 책을 사고 책을 읽는 것에만 집중해보는 것이다. 비록 읽지는 않더라도 강박적으로 책을 사들여도 좋다. 와타나베 쇼이치의 말처럼, 지적 생활이란 책을 사는 삶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적어도 1년 정도는 책에만 미쳐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운동하는 해’ ‘봉사하는 해’ ‘여행하는 해’ ‘효도하는 해’ 다 괜찮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착한 일을 하루에 한 가지씩 여러 날에 나누어 하는 것보다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원리를 1년 전체에 적용해보는 것이다. 하나에만 집중하게 되면 다른 목표들에 소홀해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온 방식대로 산다면 어차피 내년에도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이 뻔하지 않은가? 과감하게 전략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2018년 새해에는 무술년(戊戌年)이라는 이름이 주어져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나만을 위해 스스로가 붙이는 새로운 이름이다.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2018년을 사는 거다. 그 한 가지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는 배수진을 친 후에도 같은 후회를 반복한다면, 그때는 원래 삶이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여도 좋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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