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북한 1호 역할 최성환씨
“영상 속 걸음걸이 수없이 연습해”
#움직임을 디지털화 ‘모션 캡처’
골룸 이어 킹콩까지 완벽 소화
영국배우 앤디 서키스 스타덤에
‘대호’ 호랑이도 배우가 연기
# ‘괴물’ 오달수, ‘옥자’ 돼지 이정은
목소리 연기로 영화 생생함 살려
배우 정우성이 몸을 던져 보호하고, 곽도원도 그를 살려 내려 안간힘을 쓴다. 지난달 31일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강철비’엔 남북의 두 철우가 감싸는 ‘특급 인물’이 있다. 북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북한1호(김정은 국방위원장)’다. 북한1호는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남북 갈등의 한복판에 서 이야기에 긴장감을 줄뿐더러 현실감까지 높인다.
‘강철비’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벌어진 뒤 북한1호가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 속 북한1호는 개성공단에서 북한 주민들에 손을 흔들거나 수술대에 눕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북한1호인 줄 모르고 오디션… 40㎏ 찌우고 걸음 연구
수술대 누운 북한1호는 촬영용 마네킹(더미)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북한1호는 컴퓨터그래픽(CG)의 도움 없이 사람이 직접 연기했다. 배우 최성환이 ‘특수 배역’을 맡았다. 그는 ‘불한당’ 등에서 건달 단역을 맡았던 올해 7년차 배우다.
출연까지 곡절이 많았다. 최성환은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캐스팅 디렉터인 지인의 소개로 건달 역인 줄 알고 오디션을 보러 갔다 북한1호 역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그는 오디션에서 북한1호라 생각하며 걷고 손뼉 치는 연기를 했다.
제작진은 체형 등에 반해서 최성환을 북한1호로 최종 캐스팅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북한1호가 된 최성환은 몸무게 40㎏을 불렸다. 언론 사진 등을 통해 본 김정은의 체중이 140㎏은 돼 보여 체형을 더 닮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랫머리를 짧게 자른 뒤 윗머리와 대비를 이루는 투 블록 헤어 스타일도 똑같이 따라 했다. 유튜브에서 김정은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그의 걸음걸이를 수 없이 반복했다.
연습하다 보니 북한1호 역에 욕심이 생겼다. 최성환은 북한1호 최종 캐스팅 직전 들어온 다른 영화 출연 제안도 고사했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영화 촬영을 하며 북한1호로 산 최성환은 “나중에 (북한으로) 끌려가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는 속내도 털어놨다.
영화엔 최성환의 얼굴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박민희 ‘강철비’ 총괄프로듀서는 “특정 인물을 희화화할 우려가 있어 배우의 얼굴을 최대한 가렸다”고 말했다. 양우석 ‘강철비’ 감독은 영화적인 제재가 있을 수도 있어 북한1호의 실명을 영화는 물론 엔딩 크레디트에도 넣지 않았다.
북한1호엔 2명, 김광석 역엔 4명 투입
“누군가와 똑같아 보이게 연기해야 하는 게 더 어렵다.” 배우들은 유명인을 연기할수록 작업이 고되고 심적 부담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관객이나 시청자가 기억하는 유명인의 모습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욕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KBS1 시사교양프로그램 ‘환생’에서 김광석(1964~1996)을 연기한 배우 노희석은 “만약 (준비해서 김광석과) 똑같이 나오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말을 제작진에 한 뒤 촬영에 임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아예 ‘김광석의 집’으로 꾸렸다. 시선이 머무는 방부터 부엌 싱크대, 대문 등에 A4 용지 크기의 김광석 사진 200여장을 붙여 놨다. 노희석의 말을 빌리자면 “김광석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일”이었단다. 기타도 새로 배웠다. 김광석 유족과 박학기 등 김광석의 측근들을 만나 그의 습관들을 체크했다.
“김광석 씨가 기타 연주를 할 땐 기타를 왼쪽 다리에 받치고 왼발을 살짝 까치발로 들어요. 말이 길어지면 오른손을 기타 몸통 위에 올린 뒤 왼손을 포개고요.” 노희석은 이런 김광석의 특징을 하나도 빠짐없이 ‘환생’에서 재현했다.
북한1호와 김광석 역할처럼 유명인을 연기한 배우 대부분은 자신의 본 얼굴을 작품에 드러내지 못한다. 자신의 얼굴을 알려야 하는 배우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출연 설득은 제작진의 몫이다. 연기가 유명인의 흉내를 넘어서 관객을 향하는 공감의 다리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 영화 프로듀서 A씨는 “연기란 게 자신을 없애는 과정”이라며 “단역 배우들에게 ‘연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란 명분을 줘 다가간다”고 귀띔했다.
유명인 연기엔 여러 명이 투입되기도 한다. ‘강철비’의 경우 최성환의 배에 문신이 있어, 북한 1호의 수술 장면엔 또 다른 배우를 썼다. ‘환생’에서도 노희석을 포함해 4명이 김광석 역을 연기했다. 김광석의 얼굴뿐 아니라 키 등 체형까지 맞춰 인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었다.
‘대호’의 얼굴, ‘옥자’의 목소리
특수 배역이라고 늘 카메라 뒤에 가려져 있는 건 아니다.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는 특수 배역으로 스타가 된 사례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과 ‘킹콩’의 킹콩이 그가 연기한 대표적인 배역이다. 골룸은 관객들에 깊은 인상을 남겨 그가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일 정도로 화제였다.
컴퓨터그래픽(CG)에만 기대 가상 캐릭터의 표정 등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배우의 움직임을 디지털로 옮긴 뒤 CG를 덧입히는 ‘디지털 배역’ 즉 모션 캡처 배우가 등장한 이유다. 국내에선 배우 곽진석이 영화 ‘대호’에서 호랑이의 디지털 배역을 맡아 움직임에 생동감을 주기도 했다.
목소리 연기에도 ‘특수 배역’이 있다. 배우 오달수는 ‘괴물’에서 수질 오염으로 탄생한 괴물의 목소리를, 이정은은 ‘옥자’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를 대신 연기했다. 모두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속 가상 캐릭터의 배역이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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