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도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알리는 ‘미투(me too)’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샘과 현대카드 등 직장 내 성폭력 경험 사례가 잇따라 폭로되며 기업 내 성폭력 문화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데 이어 새해에도 이 같은 고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오전 경남 김해시 김해서부경찰서 앞에서 현직 여자경찰관 A경위가 동료 여경의 성희롱 사건과 관련 조직 내에서 부당한 갑질과 음해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경찰 내 성폭력은 과거에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실 발표에 따르면 2014~2016년 3년간 성 관련 비위를 저질러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모두 148명이며 이 가운데 같은 직장 내 동료 여경을 상대로 성 비위를 저지른 경찰관이 68명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에서도 현직 경찰관이 경찰 내부의 성폭력 문화와 문제 처리 과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일은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A경위의 1인 시위는 큰 주목을 받았다.
A경위는 지난 4월 같은 지구대에 근무하던 20대 후배 여경 B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찰차를 타고 근무를 함께 하는 C경사로부터 한 달간 지속적인 성희롱과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B씨에게 절차에 따라 성희롱고충상담원과 상담하고 지구대장에게 보고하라고 조언했다. 이후 경찰은 감찰에 착수했고, C경사에게 감봉 1개월 징계를 내리고 다른 지역으로 전보 조치했다.
하지만 이후 A경위에게 불똥이 튀었다. 조직 내에 A경위가 C경사를 음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A경위가 사건 제보자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A경위는 “당시 지구대장 D경감이 치안평가에서 꼴찌를 하게 됐다며 공개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A경위는 자신이 처리한 사건을 문제 삼아 C경사가 자신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주장했다. A경위는 “제보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만발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며 1인 시위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A경위의 1인 시위가 이틀째 이어진 9일에는 창원과 김해 지역 여성단체들도 기자회견에 나서 “경찰 내 성범죄, 갑질 적폐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9일 경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김해여성의전화, 경남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성희롱을 당한 후배 여경을 가장 상식적인 매뉴얼대로 고충상담원에게 안내해 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성희롱 피해자 조력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는 과연 경남경찰청 내 직장 성희롱 예방지침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의심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9일 논평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보 조치된 성폭력 가해자가 지구대 단체카톡방에 올린 글에 대해 응원의 글이 달렸고, 이에 피해자는 성비위를 조작한 여경으로 몰리는 등 조직적으로 매몰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며 “우리는 가해자에게 동조하거나 협력하는 자들, ‘조직 보위’ 등을 구실로 폭력을 은폐시키고 왜곡하는 자들,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무고나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하는 자들, 가해자와의 연대를 구축하며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오히려 힘을 얻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남경찰청은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 내부고발자 보호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에 따라 9일 보도자료를 내고 ‘직장 내 성희롱방지 종합대책’을 수립,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A경위에 대한 경찰청 차원의 재조사도 10일부터 시작됐다.
최근 연예계에서도 스토킹 범죄 등 성폭력 범죄 피해 경험을 직접 밝히며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일 EBS 신년특집 ‘미래강연 Q- 호모커뮤니쿠스, 빅 픽처를 그리다’에 출연한 가수 솔비는 스토킹, 동영상 유포 등 범죄의 피해자가 됐던 경험을 밝히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관련 법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작진으로부터 ‘스토킹을 실제로 당한 피해자가 나와서 이야기를 하면 좋겠는데 피해자들이 공개 발언을 꺼린다’는 말과 함께 강연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강연에 나선 이유로 “피해자가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솔비는 “연예인이라는 특성상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도 많고 사이버상에서 쫓아다니며 악플을 남기거나 커뮤니티에 루머를 만드는 등 범죄에 노출된 부분이 많다”며 “알아보니 사이버 스토킹은 생각보다 범죄에 대한 처벌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이 스토킹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범죄에 대한 증거를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금이 10만원 정도 밖에 안된다”며 “우리 사회가 어쩌면 큰 범죄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피해자의 입장에서 관련 법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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