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TV를 켜고 음식을 먹는다. 음악을 들어도 좋다. 다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이내 옷을 챙겨 입고 운동을 하러 나간다. 여자들은 몸매를 드러내는 요가나 필라테스가 필수다. 여기서 문제. 어떤 방송 프로그램이 떠오르는가. MBC ‘나 혼자 산다’? SBS ‘살짝 미쳐도 좋아’? TV조선 ‘비행소녀’? 정답도 오답도 없다. 요즘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장면이니까.
출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으며 촬영하는 ‘관찰 예능’이 방송가를 평정했다. 일상을 보여주거나 여행에 동행하는 그림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화면을 장식한다. 그 속에도 트렌드는 있다. 최근에는 싱글, 외국인, 여행이 유행 키워드로 꼽힌다. 2013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나 혼자 산다’는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시작할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성과다. 김용건 한혜진 박나래 등 출연자들은 방송 광고를 점령했고, 전현무는 MBC ‘2017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프로그램의 인기를 증명했다.
‘나 혼자 산다’의 포맷은 간단하다. 집을 공개한 연예인들이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훔쳐보는 프로그램이다. 적은 제작비로 큰 효과를 누렸으니 경쟁 방송사들이 욕심을 낼 만하다. ‘살짝 미쳐도 좋아’와 ‘비행소녀’ 역시 ‘나 혼자 산다’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간다. 개인 공간이 공개된 적 없는 연예인들의 경우 집을 배경으로 하루 일과를 보여준다. 이마저 흥미가 떨어지면 여행을 떠나거나 친한 연예인 동료를 만나는 ‘설정’ 컷들로 채워진다. 이 과정에서 특정 상품이나 식당, 학원 등의 간접광고가 끼어든다.
외국인이 등장하는 예능프로그램이라고 다를까. 한국으로 여행 온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MBC에브리원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와 올리브의 ‘서울메이트’는 갈수록 비슷한 장면들로 방송 분량을 채운다. 재래시장이나 수산물시장은 외국인들이 꼭 들르는 코스다. 그러다 보니 한 프로그램에서도 엇비슷한 장면이 여러 번 보여진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빠지지 않는 게 ‘산낙지 퍼레이드’다. 멕시코인이든 러시아인이든 의무인 듯 산낙지 먹기에 도전한다. ‘서울메이트’도 다르지 않다. 재래시장 코스가 늘 반복된다.
출연 외국인들이 원하는 여행 코스에 산낙지 먹기나 재래시장 방문이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차별화 해 담는 건 제작진의 몫이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될수록 시청자들은 식상하기 마련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독일편이 큰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예상치 못한 여행 코스 때문이었다. 비무장지대나 임진각, 제3땅굴, 서대문형무소 등은 국내 시청자의 허를 찌르는 코스였다.
한때 ‘먹방’과 ‘쿡방’이 방송가 대세였다. 되는 장사만 하려는 ‘쏠림 현상’이 만든 유행이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관련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예능 제작진이 똑 같은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차별성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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