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 기자의 TV다시보기]
지난 17일 TV에서 남녀 쇼트트랙 경기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한국선수들의 치열한 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날 서이라 선수가 출전한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가 가장 아찔했다. 그는 미국의 존 헨리 쿠르거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심판진의 결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5분여 동안 비디오판독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를 중계하던 KBS와 MBC, SBS는 모두 ‘서이라 결승진출’이라고 쓴 커다란 글자를 화면에 내보냈다. 곧이어 왼쪽 상단에는 ‘임효준ㆍ서이라 결승진출’ 자막이 올라왔다. 이 자막을 마냥 믿을 수는 없었다. 서 선수는 이날 준결승에서 캐나다 선수 2명과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했고, 경기 후에는 세 사람이 뒤엉켜 스케이팅하는 장면이 화면에 반복해서 나왔다.
지상파 3사의 해설위원들도 “서 선수의 결승진출이 이상 없을 것으로 보이긴 하는데요”라며 자신 없는 말만 반복했다. 선수 출신 전문가들도 비디오판독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자막부터 내보내는 성급함을 보였다. 서 선수가 결승에 진출했기에 망정이지 실격이라도 했다면 엄연한 ‘방송사고’였다.
요즘 지상파 3사의 쇼트트랙 중계를 볼 때면 의심부터 하게 된다. 지난 13일 최민정 선수가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전에서 2위로 들어왔지만 실격해 메달을 놓친 일 때문이다. 당시 지상파 3사는 결승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메달 그림을 화면에 큼지막하게 그려 넣더니 ‘은메달 최민정’ 자막을 띄웠다. 왼쪽 상단에는 ‘최민정 은메달’ 글자를 박아놓았다. 비디오판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4분여 간 자막은 고정됐다.
하지만 결과는 자막과 달랐다. 최민정 선수가 실격하면서 이들 방송사들은 모두 ‘오보’를 냈다. 정확한 경기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자막부터 서둘러 내보냈다가 방송 사고를 냈다. ‘자막 오보’도 모자라 캐스터들이 경솔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사과한 방송사는 한군데도 없다. 그저 자그마한 실수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중계를 이어갔다. 자막에만 의지해 정보를 얻은 시청자들이라면 뒤바뀐 결과가 의아할 뿐이다.
평창올림픽은 지상파가 그동안 잃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전 시청률은 지상파 3사 합계 56.3%(KBS 23.7%, SBS 18.8%, MBC 13.8%)나 나왔다. 지상파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 없는 ‘자막 속보’ 경쟁으로 날려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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