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감동 선사한 평창 평화 드라마
한국당 北 김영철 표적 삼아 어깃장 놓아
큰 희생 부를 전쟁 막는 노력에 동참하길
2014년 한 케냐인이 평창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려고 비행기를 탔는데 내리고 보니 평양 순안 공항이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평창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평양 아니고 평창”이라는 부가 설명이 필요했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진영이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혼란이 커지기도 했다.
평창 올림픽이 멋지게 성공하고 폐막함에 따라 지구촌에서 평창의 인지도는 평양 못잖게 높아졌다. 세계 각국 젊은이들이 빙상과 설원에서 땀과 눈물을 뿌리며 펼친 감동적 드라마는 지구촌 사람들 가슴 속에 오래 간직될 것이다. 평창이란 지명은 늘 즐겁고 기분 좋은 기억과 함께 떠올려지고, 더 이상 평양과 헷갈리지도 않을 터이다. 이번에 이룬 가슴 벅찬 ‘평창의 평화’가 ‘평양의 평화’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지구촌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경북 의성군도 전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이 고장 출신 한국 여자컬링대표팀이 컬링 강국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써 내려간 성취와 감동의 스토리 덕분이다. 비록 금메달은 놓쳤지만, 그들의 활약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영국 가디언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은 앞다퉈 의성 현지 취재를 곁들여 마늘 고장 ‘갈릭 걸스’의 활약을 소개했다.
평창올림픽 후반부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 이름 또 하나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바로 우리 가슴에 묻은 천안, 천안함이다. 북한 소행이 확실한 천안함 폭침으로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이 만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군 정찰총국의 당시 책임자가 김영철이다. 북한은 현재 당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는 그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 방남 대표단장으로 내려 보냈다. 평창올림픽을 무대 삼아 제재 돌파 국면전환을 꾀하는 김정은으로서는 여동생 김여정 특사 카드에 이어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그를 파견하는 게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서는 국민 정서상 거부감이 커 논란이 불가피했다.
자유한국당은 그를 전범(戰犯)으로 규정해 ‘체포 또는 사살 대상’이라며 방남 길을 가로막고 밤샘 농성을 벌였다.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의 반발도 거세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의 배경과 성격을 냉정히 되돌아 보면 이런 대응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천안함 비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역에서 남북 해군 간 대결과 긴장의 산물이다.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에 크게 당한 북 해군은 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막바지에 기습적으로 2차 연평해전을 일으켜 우리 해군에 보복을 가했다. 그러나 2009년 11월 대청해전 패배로 더 이상 수상함전에서는 우리 해군을 당할 수 없게 되자 2010년 3월 천안함에 기습 어뢰공격으로 보복한 것이다.
남북 간 공격과 보복 공격이 언제든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 공격주체의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천안함 폭침 당시 도발공격 최종결정자는 최고사령관인 김정일이었을 것이고, 막 별 넷을 달고 군 장악에 나선 김정은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영철은 최고사령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한 지휘관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당의 문제의식대로라면 김정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은 김정은 정권과는 어떠한 대화도 해서는 안되고 전쟁이든 뭐든 도발 책임자에게 징벌을 가하기 위한 방법만을 추구해야 논리적으로 맞다.
생떼 같은 천안함 장병들을 희생시킨 가장 큰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지만 경험상 충분히 예상되는 북한군의 보복에 경계심을 갖고 대비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 안보·국방 라인과 군 지휘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시절 여당이던 한나라당의 후신인 한국당은 이런 점에서 자숙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평창 평화의 분위기를 살려 천안함 희생보다 몇 백배 몇 천배의 희생을 부를 대규모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게 천안함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진정으로 기리고 바르게 보답하는 길이다.
논설고문·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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