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의 압승으로 끝난 6ㆍ13 교육감 선거는 공정과 혁신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열망이 일선 교육현장에 뿌리 내렸음을 의미한다. 진보 교육감들은 17개 시ㆍ도 가운데 14곳을 석권하며 4년 전 (13곳 당선) 선거 결과를 뛰어넘는 역대 최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합법화, 정치성향 투표 한계 극복 등 정책 이슈와 무관하게 이들이 맞닥뜨려야 할 충돌 지점은 여럿이다. 진영 논리에 매몰되거나 표심에 담긴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할 경우 ‘진보교육감 2기’ 시대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는 현직 출마자 11명이 전부 당선됐다. 장휘국(광주)ㆍ민병희(강원)ㆍ김승환(전북) 당선인은 3연임 도전에도 성공했다. 또 20년 동안 보수의 공고한 아성이었던 울산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지부장 출신의 노옥희 당선인이 6명의 후보를 제치고 처음으로 교육감 타이틀을 거머쥐는 등 진보교육은 확실한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반면 보수진영은 대구(강은희)ㆍ경북(임종식) 지역에서만 당선인을 내는 등 연이은 참패를 맛봤다. 범 보수로 분류되는 설동호(대전) 당선인을 합쳐도 3곳에 불과하다.
선거로 확인된 민심 못지 않게 진보 교육감들을 둘러싼 환경도 우호적이다. 교육부는 현재 교육 자치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전담 조직(지방교육자치강화추진단)을 꾸려 초ㆍ중등 정책 권한을 시ㆍ도교육청에 이양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미 가시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진보 교육감들이 ‘특권 교육’의 상징으로 지목한 외국어고(외고)ㆍ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폐지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박근혜 정부 때만해도 교육감이 이들 학교를 없애고 싶어도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 장벽이 사라졌다. 외고ㆍ자사고 존치를 주장하는 반발 여론을 감안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제도적 걸림돌은 제거했다는 뜻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전국 시ㆍ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교육 현안에 공동 대응할 여지가 커져 교육부의 정책 파트너로서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험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소 이념 편향으로 비칠 수 있는 선거 결과는 논쟁적 사안의 휘발성을 배가시키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법외노조인 전교조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교육감 당선인 17명 가운데 과거 직ㆍ간접적으로 전교조에 몸담은 이들은 절반이 넘는 10명에 달한다. 초선인 장석웅 전남교육감 당선인은 2010~2011년 전교조 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정부에 강경 투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장 정부가 불허한 전교조 노조 전임자 휴직 신청 이슈부터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10개 시ㆍ도교육청이 받아 들인 33명의 노조 전임자 휴직을 반려했고, 최종 결정은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놓은 상태이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교육부 입장과 달리, 진보 교육감들은 합법화에 적극적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전임자는 인정해야 한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전교조도 이날 논평을 통해 “전교조 출신 당선인이 더 늘어난 6ㆍ13 선거는 그 자체로 법외노조화가 철회돼야 하는 당위성을 뒷받침한다”며 정부를 거세게 압박했다.
선거 결과가 교육감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교육감 ‘직선제 회의론’에 다시 불을 댕길 소지가 높다는 점도 부담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국내ㆍ외 대형 이슈에 밀려 교육감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이 정점을 찍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책이 아닌 정치 성향에 따라 투표했다는 건데, 실제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교육감 선거의 특수성에도 대전ㆍ제주 정도를 빼면 단체장과 교육감의 성향은 거의 일치한다. 특히 진보 11명에 더해 중도보수 성향의 설동호 당선인까지 12명의 현직 교육감 전원이 당선된 것은 민심이 진보 교육정책을 꼭 지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감 선거를 지방선거와 분리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 전문가들의 진단도 대체로 비슷하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래를 내다 본 교육 비전을 제시한 후보는 드물고 ‘이런 것을 해주겠다’는 식의 지역 특수성에 기대 접근하다 보니 자녀가 없거나 장성해 공약과 무관한 유권자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학부모 최은희(48)씨는 “교육감을 시민이 직접 뽑도록 한 것은 자녀 유무를 떠나 교육정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인데 그런 조건에 부합한 정책을 내놓은 후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며 “교육감 체제가 정치싸움으로 변질되면 표심은 언제든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