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바에는 차라리 통일대박이 낫다. 지금은 오로지 위장평화 공세가 전부다.”
보수진영의 빈곤한 대북관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쓴 소리다.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는데 냉전적 사고에 갇혀 방향타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오로지 딴지만 거는 수구세력으로 내몰려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가 됐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17일 “보수 유권자들조차 남북 화해를 바라며 이미 변해 있는데 이를 대변할 정당은 예전과 똑같은 대결논리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비단 안보의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이 일상을 파고들며 세상은 날로 발전하는데 보수정당은 대중을 선도할만한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와 낙수론, 감세 등 기존의 낡은 주장만이 ‘철 지난 레코드판’을 타고 되풀이될 뿐이다.
2012년 대선까지만 해도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접근과 경제 양극화 해결은 보수와 진보를 관통하는 공통의 비전이었다. 실천의 문제만 남은 듯 보였다. 하지만 재집권 이후 보수가 좌표를 잃으면서 사회적 공감대는 뒷전으로 밀렸다. 변화와 단절된 보수의 고집과 오만은 급기야 탄핵정국을 거치며 스스로의 뿌리를 걷어찼고 자멸을 재촉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가령, 남북관계 진전에 찬성하지만 국익을 우선하자는 식으로 보수가 스탠스를 잡아야 하는데 아예 현실을 부정하면서 반대로만 움직이니 지지층이 등을 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대한민국 보수는 반공과 성장의 과실을 먹고 자랐다.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반감을 키우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권력을 유지했고, 재벌 주도의 고도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를 신봉하며 오로지 파이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보수의 경직된 안보관은 국민에게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정부여당은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며 꼬일 대로 꼬인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면서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려 다양한 시도에 나선 반면, 보수진영은 안이함과 패배감에 젖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에서 시작된 제재와 압박의 기조는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밀어붙이는 교조적 신념으로 변질됐고, 때론 극우를 자처하며 국민을 향해 윽박지르는 볼썽사나운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북한의 무력행사를 우려하면서도 평화적으로 남북관계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의 요구가 갈수록 비등해졌지만 보수는 끝내 외면하며 귀를 닫았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보수가 통일과 북핵 폐기를 외치면서도 이와 정반대로 마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듯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낙수효과 경제논리도 현실과 동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이윤이 서민에게 돌아가고 고용이 늘어야 하는데 반대로 정부가 기업의 뒤통수를 쳐서 밥그릇을 챙기는 비리로 얼룩진 탓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그럴듯한 수식어조차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그치면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난 10년의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경제가 아무리 좋아져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냉혹한 진리를 국민 개개인이 깨닫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보수가 요란한 구호만 앞세우며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한 책임도 적지 않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는 “지난 1년간 보수가 한국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해왔는지 의문”이라며 “이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며 끊임없이 방향성을 제시해왔다”고 말했다.
결국 국민이 보수를 향해 시선부터 돌리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김만흠 원장은 “정책이나 비전을 내놓기 이전에 정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이게 바로 보수정당과 문재인 정부의 차이”라고 일갈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이의재 인턴기자(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