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지리멸렬했던 미국 보수가 다시금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워싱턴 아웃사이더의 출현 때문이었다. 워싱턴의 기득권 정치를 정면 겨냥한 선거 운동으로 대 역전 드라마를 일구며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의 보수 포퓰리즘은 숱한 논란의 대상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트럼프 시대가 6ㆍ13 지방선거를 통해 몰락에 가까운 충격을 받은 한국의 보수 진영에게 던지는 함의는 다시금 되새겨볼 만하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가 정치적으로 소외돼 있던 계층의 목소리를 끌어 올린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대선 슬로건은 ‘잊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2016년 7월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 연설에서 노동 계층을 거론하며 “그들은 무시되고 버림받은 잊혀진 사람들이다”며 “열심히 일하지만,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 나는 당신들의 목소리다”고 웅변했다. 물론 그 대상이 백인 하층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백인 국수주의라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제조업 공동화로 몸살을 앓고 있던 밑바닥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함으로써 보수의 지지 기반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러스트 벨트’(미국 오대호 주변 공업지대) 지역의 노동계층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이었지만,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변모해 있다. 장년층과 영남 지역 기반에만 안일하게 안주해온 한국의 보수 진영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정책 강화나 보호무역주의 등 핵심 지지층의 요구를 주요 정책으로 실천하고 있긴 하지만, 부동산 사업가 출신답게 기존의 이념이나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되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게 대북 문제다. 한국의 보수 진영이 북한에 대한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압박과 최대 관여를 거리낌 없이 넘나들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왔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 핵이 더 이상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북한과의 신뢰 구축에 먼저 나선 것도 전례 없는 방식이다. 그의 대표적 협상술인 “크게 생각하라”는 기존의 사고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의 극대화에 다름 없다.
이에 비해 한미 동맹을 그토록 중시하던 한국의 보수 진영이 되레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것은 시대적 변화를 전혀 모를 정도로 이념적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로 인해 결국 응징에 가까운 국민적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 시대는 국익을 위해선 경직된 이념적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을 던지는 셈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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