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
경찰, 거의 사용 않는 휴대폰만
통화내역 조사한채 무혐의 처분
#검찰 “문건에 나오는 방 사장은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오인” 결론
접대 당사자로 지목받은 전 사장
“검찰이 완전히 사실 왜곡” 반발
#장씨와 만났던 임원 3명 확인
일부 주요 인물 적극 수사 안 해
수사당국이 고 장자연씨 사망사건을 수사할 당시 관련 주요 인물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불충분한 증거를 채택하는 등 사실상 시늉에 가까운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수사 및 공판 기록들에 의해 나타났다. 최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관련 수사에 축소 및 은폐가 있었는지 본조사를 벌이기로 한 결정은 사실상 부실 수사가 이뤄졌고 이에 따라 각종 의혹이 증폭되었음을 뒷받침한다.
장씨 사건 수사ㆍ재판 기록 5,048쪽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경찰이 ‘장자연 문건’에 등장했던 ‘조선일보 방 사장’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휴대폰은 한 달 수신 통화 내역이 4건(총 35건 통화)에 불과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전화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수사 결과 방상훈 사장의 접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고, ‘방 사장’을 특정할 인물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상 부실한 수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수사팀에 참여했던 경찰 관계자 이모씨는 “지방청 형사과장이 조선일보 간부와 전화통화를 해서 방상훈 사장의 전화번호(휴대폰 번호 하나)를 알아낸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전화번호의 통화내역을 뽑아서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 경찰 관계자는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적시돼 있다고 실명을 언급한 혐의(명예훼손)로 기소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공판에 출석(2011년 10월 10일, 서울중앙지법)해 이같이 증언했다.
경찰은 2009년 4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장씨 소속사 대표 김모(49)씨와 장씨가 사용한 휴대폰(각각 3대)으로 1년간 발신ㆍ역발신한 총 5만1,162회 통화와 통화 내역을 대조해 보았으나 방상훈 사장과의 통화내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이는 무혐의 처분의 주요 근거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방 사장 휴대폰 통화 내역에 가족과의 통화가 있어 그가 사용한 휴대폰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경찰 수사기록을 제시하며 방 사장은 2008년 9월 한달 동안 총 35번 통화를 했고, 수신통화는 겨우 4건이라는 점을 근거로 “조선일보사의 사장이 한 달에 35통의 통화를 했다는 것을 경찰에서는 믿었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 휴대폰이기 때문에 통화내역을 조사했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 패턴이기 때문에 증인이 뭐라고 답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방 사장은 경찰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확보한 날 바로 가입 해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9월은 장씨가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한 접대시기로 적시한 시점이다. ‘2008. 9. 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방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 대표나 장씨의 휴대폰 내역상 송수신의 상대방으로 돼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경찰에서 파악을 했느냐’고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거의 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애매한 답변을 했다. 경찰이 방 사장의 업무상 회사 전화와 비서의 통화내역 등을 조사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기억이 없다”고만 했다.
방상훈 사장은 2009년 4월 23일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 사옥에서 경찰의 방문 조사를 받은 자리에서 해당 휴대폰 번호에 대해 “제가 사용한 전화가 맞다”며 “한대뿐이고 지금은 다른 전화를 사용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방 사장은 장씨와 장씨 소속사 대표 김씨에 대해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고, 장씨 문건에 대해 “왜 저를 상대로 그런 문건을 작성했는지 황당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또한 “제 도덕성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일보 사주로서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강조했다.
검ㆍ경은 2009년 수사에서 장자연 문건에 나오는 ‘조선일보 방 사장’은 스포츠조선 사장출신 하모(69)씨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씨는 하씨와 2004년부터 친분이 있었고, 김씨는 “2008. 7. 17. ‘조선일보 사장 오찬’이라고 기재된 것은 스포츠조선 사장을 지칭한다”라고 했으며 주소록에 ‘조선일보 사장 소개’라고 기입된 것도 하씨를 지칭하는데 비서가 잘못 기재했다고 진술했음을 감안한 것(2009년 8월 19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불기소 결정서)이다.
기록들에서 하씨는 자신이 ‘조선일보 방 사장’을 사칭했다거나 김 대표나 장씨가 ‘스포츠조선’과 ‘조선일보’를 착각했을 것이라는 지적에 극구 반발하고 있다. 하씨는 이종걸 의원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공판에 2012년 6월 25일 증인으로 출석해 “김씨가 스포츠조선과 조선을 구분 못 할 일이 없고, 그 사람이 나를 방 사장으로 부른 일도 없고,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은 종합일간지를 쳐 주지만, 스포츠계나 연예계는 스포츠지가 제일 큰 신문인데 스포츠조선과 조선일보를 구분하지 못하겠습니까. 방씨와 하씨를 구분 못 합니까”라고 항변했다. 실제 장씨 소속사 대표 김씨도 수사 당시 “장씨에게 하씨를 스포츠조선 사장 대표라고 분명하게 소개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씨는 또한 “경찰이 김씨가 보관하는 컴퓨터 파일에 자신이 만났던 사람을 쭉 적어 놓았고 나와 관계된 것은 4개가 있다고 했는데, 3개는 ‘스포츠조선 하 사장 소개’라고 써놓는 것으로 보아 나와 조선일보 사장을 구분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씨는 “검찰의 (방 사장 등에 대한) 불기소 결정문을 보니까 완전히 사실을 왜곡했더라”며 “나는 검찰 조사를 받아 본 적도 가본 적도 없으며 언젠가는 문제삼을 것”이라고 당시 수사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실제 2009년 8월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에는 ‘김 대표가 하씨에게는 2007년 10월경 ‘이닝’ 중국음식점에서 장자연을 소개한 적이 있으며’라고 돼 있는데, 이 자리가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이 장소를 정하고 주도한 자리였다는 하씨 발언은 전혀 적시하지 않았다. 당시 불기소 결정서를 작성했던 수원지검 성남지청 김모 부장검사는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해당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서는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씨는 경찰 수사에 대해서도 “몇 번 묻고 간 경찰이 나중에 와서 ‘와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하도 위에서 가라고 하니까 왔다’고 이야기했다. ‘나와 관계도 없는데 왜 오냐’고 했더니 ‘조선일보에서 가라고 해서 왔다’고 하더라”며 “위라는 것은 조선일보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씨는 “김 대표는 방상훈 사장을 모를 것”이라며 “방용훈 사장을 안다는 것은 알고 있고, 방상훈 사장과는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대표도 “방상훈 사장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2008년 9월의 조선일보 방 사장’의 존재가 미궁에 빠진 상태에서, 지금까지 장씨와 만남이 확인된 조선일보 및 계열사의 임원급 간부는 3명이다. 모두 장씨가 그 자리에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씨는 2007년 10월 식사 자리에서 장씨를 만났고, 이 자리는 방용훈 사장이 주재했으며 9명이 참석했다. 하씨는 장씨가 식사 자리에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나중에 참석자에게 물어봐서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방용훈 사장도 자신이 장씨를 만났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 망인(장자연씨)의 존재 자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방용훈 사장에 대한 검ㆍ경의 수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당국은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에 대한 관련자의 진술이 있음에도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셈이다.
2008년 10월 장씨가 불려 나간 술자리에는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방정오 TV조선 전무가 참석(2009년 4월 15일 경찰의 코리아나호텔 방문조사로 확인)했는데, 방정오씨도 장씨의 존재를 몰랐다고 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방정오씨는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씨는 대학 다닐 때 친구들 모임에서 선배라고 소개받았다”며 “그날 술자리에 대략 9시 30분에 갔는데 그 장소에서 장자연을 본 기억이 없고 당시 상황이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고 진술(경찰의 코리아나호텔 방문 조사)했다. 해당 술자리에는 5명이 참석했다. 장씨 소속사 김 대표는 그날 술자리가 끝나고 새벽 1시 22분쯤 장씨에게 “직원들 앞에서 말조심해”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경찰이 “방정오 등을 상대로 한 술접대 자리에 대한 비밀을 유지해달라는 의미로 발송한 것이 아닌가”라고 묻자, 김씨는 “보낸 기억도 없고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2009년 7월 4일 분당경찰서 조사)
한편 장씨와 친자매처럼 지냈다는 이모(38)씨도 증인(2011년 10월 10일, 서울중앙지법)으로 나서 “술자리에 불려 나갔던 대상자들 중에 (장씨가) 조선일보 사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지” 묻는 검사의 질문에 “이름을 말하진 않았고 조선일보 사장이라고만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스포츠조선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지는 “이어서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판사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장씨가 자살한 후 한참 시끄러울 무렵, 걸려오는 전화를 거의 회피했고 그 과정에서 휴대폰으로 ‘조선일보 기자입니다. 분명 저희 쪽 도움이 필요할 날이 있으실 텐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전화를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하지 마십시오’라는 문자가 온 적이 있다”며 “분당경찰서에서 그런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경찰관에게 진술했으나 그런 내용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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