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묵을 쑬 때마다 강조했다. 거품을 잘 봐야 한다, 자잘한 것들이 저 잘났다고 나대면 아직 먼 거다, 거품이, 그걸 거품이라고 해야 하나 공기방울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지 간에 끓어오르는 모양 말이다, 그게 중대가리 모냥 풀떡풀떡 올라올 때까지, 도 닦는다 셈치고 저어라, 중간에 멈추면 다 눌어붙는 거 알지? 기억해라, 중대가리처럼 풀떡풀떡. 왜 하필 중대가리에 풀떡풀떡이냐 물으면, 모양은 딱 중대가리고, 소리도 딱 그렇게 풀떡풀떡인데, 그럼 뭐라고 말해야 되냐고 반문한다. 그야말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말하는 어린 장금이다. 엄마에게 중대가리와 풀떡풀떡은 찰랑찰랑 야들야들 카랑카랑한 묵이 완성되는 신호이자 임계점의 다른 말. 모자라면 묽어 툭툭 끊어지고, 지나치면 야들한 식감은 없이 단단하기만 한 묵이 된다.
그런데 다른 무언가를 쑤거나 졸일 때, 그러니까 죽이나 풀이나 잼 같은 것을 만들 때, 눌지 않도록 계속 저어야 하는 임무는 비슷한데도 중대가리를 살피거나 거품 소리를 애써 귀 기울이지는 않는 듯하다. 죽이야 조금 묽거나 되어도 어차피 죽이어서 그렇다 치고, 잼은 한 숟가락 떠서 물에 떨어뜨려 풀어지지 않을 정도라는 어쩐지 조금 더 과학적인 측정법이 있기도 해서 그런가. 중대가리 풀떡풀떡 잘 쑤어진 도토리묵. 이것이 바로 완성된 문장, 유일한 문장.
스페인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토르티야(tortilla)는, 옥수수 반죽을 얇게 밀어 만든 멕시코의 토르티야와는 달리, 보통 감자와 계란으로 두툼하게 부친 오믈렛 혹은 부침개를 말한다. 토르티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얇게 썬 감자와 양파를 먼저 익혀두어야 하는데, 이때 감자는 기름을 넉넉히 붓고 끓여서 익힌다. 기억해 두자. 기름에 튀기는 것이 아니라 끓여야 한다는 것. 기름에 끓이기 위해서는 기름을 달구고 감자를 넣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찬 기름에 넣고 가열해야 한다. 그러면 정말 기름이 끓는 소리를 낸다. 찌개 끓는 소리처럼. 보글보글. 내 요리선생은 감자가 다 익었는지 확인하려면 기름 끓는 소리를 들으면 된다고 했다. 보글보글 자글자글. 그 소리가 잦아들 때, 끓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때, 감자가 뱉어낼 공기방울이 더 이상 없을 때, 그때가 바로 감자가 포근포근 잘 익은 때다. 굳이 포크로 찔러 보지 않아도 될 일.
공기방울은 수란을 만들 때에도 요긴한 측정법이 된다. 흰자는 단단하게 잘 익었으면서도 그 속에 노른자는 보드라운 반숙 수란. 모양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면야 전통적인 방법으로 밥그릇에 넣고 중탕하면 쉽지만, 맛도 좋고 모양도 예쁜 수란을 만들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국자에 담아 끓이기도 하고, 비닐랩에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싼 다음 끓이기도 하고, 식초나 소금을 첨가해 보기도 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공기방울을 지켜볼 일이다. 온도계 따위는 필요 없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 냄비바닥에 공기방울이 맺힌다. 처음엔 아주 작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크기가 커진다. 조금씩 조금씩. 성급하지 말자, 아직은 계란을 넣을 때가 아니다. 커다래진 공기방울이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밀려가기 시작할 때, 비로소 계란을 넣기 좋을 때가 된다. 공기방울이 얇을 막을 만들어 주었을 때, 공기방울 막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 물속에 들어간 계란이 슬그머니 공중부양을 한다. 눌어붙지도 않고 그저 공기방울과 뜨거운 물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 띄우고 덥히고 감싸고. 물과 공기와 계란이, 각자가 서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어루만지는 동안, 수란은 만들어진다. 거품을 읽는 자, 수란을 지배하리니. 거품의 힘으로, 공기방울의 힘으로. 모든 거품에 감사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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