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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겨울의 눈빛' 새 세대의 감수성 혁명

입력
2018.11.01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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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박솔뫼 '겨울의 눈빛'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겨울의 눈빛'를 쓴 박솔뫼 작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겨울의 눈빛'를 쓴 박솔뫼 작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흔히 작가는 사회가 강요하는 법칙과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실천하는 존재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그러한 작가들마저도 보수적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규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문법이다. 물론 작가들도 모르지 않는다. 문법이 연역적으로 확립된 보편 타당한 법칙이 아니라, 언어적 경험의 축적 속에서 우연적으로 구성된 관습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언어의 관습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기에, 언어의 전통을 존중하는 작가들일수록 문법이라는 성역을 넘보기 위해서는 특별하고도 조심스러운 접근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말의 법도를 거침없이, 한편으로는 무감각하게 거스르는 박솔뫼의 소설들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문어와 구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장들, 때로는 읊조리듯 때로는 중얼거리듯 반복과 변주 속에서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말들의 흐름은 최근작 ‘겨울의 눈빛’에 이르러 온전히 박솔뫼만의 독보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독성 짙은 문체와 리듬으로 거듭난 것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소설을 써야 했을까? 어쩌면 그녀에게 세계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와 다르지 않아서 말들의 행로를 제약하는 문법이야말로 우리의 세계 인식을 규정짓는 근본적인 원인처럼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소위 언어를 실험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엿보이는 작위성의 흔적이 박솔뫼의 소설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솔뫼의 글쓰기는 이른바 실험이나 전위와 같이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들에 붙는 관습적인 수식어들과 전혀 무관하다는 듯 무심하지만, 그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언어를 성찰하고 말들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처럼 ‘겨울의 눈빛’은 마치 문장으로 산책을 하듯 천천히 나아가면서 독자들을 돌연 낯선 현실의 풍경으로 인도하는 소설이다. 본래 산책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목표도, 계획도 없이 그저 몸이 이끄는 데로 걷다가 익숙한 시공간 속에 은폐되어 있는 낯선 현실과 직면하는 것 말이다. 문장들의 산책을 통해 박솔뫼는 현실을 실제와 망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연극적 무대로 변모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재난 이후의 도시를 무기력하게 거니는 인물들의 엉뚱하고도 매력적인 상념들을 풀어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재난 이후의 폐허와 같은 현실을 그리는 박솔뫼의 ‘겨울의 눈빛’에서 세상에 대한 비전이나 야망도 없고, 정치적 혁명에 대한 가능성마저도 잃어버린 무력한 세대의 초상을 발견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 지도를 그려나가는 박솔뫼의 소설들이야말로 정치적 거대 서사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서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다고.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의 혁명이 바로 여기, 폐허를 산책하는 문장들의 서늘한 극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강동호 문학평론가·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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