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임현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임현의 소설들은 이게 뭐 그리 큰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말 좀 들어보렴”(‘고두’)이라든가 “한번쯤 말해주고 싶은데”(‘좋은 사람’) 하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상황과 관계, 상식적인 윤리 들을 풀어놓는다. 그 평범과 사소 속에 고요히 고여 있다 곪아 버리는 마음의 풍경들이 보인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불행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과 이렇게 저렇게 연루될 수도 있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임현의 인물들이 어떤 불행에 대해 “몰랐다”고,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재수가 좋고 나쁠 따름”(‘무언가의 끝’)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 변론의 행위 속에 알게 모르게 위로받는다. 그런데 인물들이 갑자기 톤을 조금 바꾸어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지 않을까, “그럼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원했던 게 아닐까”(‘그 개와 같은 말’) 하고 의문을 품는 순간 우리는 그 의문 속에 도사린 날카로운 치명성을 감지한다. 그것은 이런저런 불행들이 아니었고, 그것과 연루된 우리 자신도 그저 이렇게 저렇게 연루된 것이 아니었다는 불길한 느낌이 돌연 어둠처럼 드리운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묻게 된다.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지 않은가? 그게 다 우리 잘못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소설은 다시 누그러져 “걱정 마” “우리는 잘 될 거”(‘거기에 있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말에서 위로를 받기보다 어떤 심연 앞에 선 듯 두려운가. 아무리 “당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줘도 왜 우리는 안심은커녕 되레 “부릅뜬 눈으로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래? 왜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내가 뭘 잘못하지 않았는데?”(‘외’)라고 외치게 되는가. 괜찮다는 임현의 말은 우리가 절대 괜찮아서는 안 된다는, 정확히 불행의 복판을 직시해야 한다는 비정한 명령 같다.
거듭 말하지만 ‘그 개와 같은 말’은 일상의 소리와 내음들을 차근차근 기술하는 가운데 어느덧 우리의 마음에 천근만근의 짐을 쌓는다. 그 짐은 애초에는 견딜 만한 작은 보따리였을 뿐인데, 도대체 어느 순간을 통과했기에 우리의 말은 개 같은 말이 되었고, 어느 경계를 넘었기에 우리의 마음은 개와 같은 마음이 되었는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순간은 우리의 모든 과거이기도 하고 그 경계는 끝 간 데 없는 평원이기도 하다. 그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을 느릿느릿하면서도 섬광 같은 축지(縮地)로 바로 여기에 부려 놓는 임현 소설의 미학은 어쩌면 그만이 읽어낼 수 있는 기이한 현실 윤리학의 상관물인지도 모른다. 죄와 위선은 한순간이며 한달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막한 과수원에서 과일들이 곯아가듯 낙하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곪아간다.
권여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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