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로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렸던 형제복지원 사건이 발생 30여년 만에 대법원에서 다시 다뤄지게 됐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20일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를 대법원에 신청했다. 비상상고는 형사판결 확정 이후라도 사건 심리가 법령에 위반된 것을 발견했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비상구제 절차다. 오직 검찰총장만이 대법원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다.
문 총장은 형제복지원장의 특수감금죄 등에 무죄를 선고한 기존 법원 판결이 ‘법령 위반’이라 판단해 비상상고 권한을 행사했다. 당시 형제복지원이 부랑자 등을 강제수용한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이 △법률의 위임을 받지 않은 훈령이면서 △부랑인의 개념이 지극히 모호하여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문 총장은 판단했다. 또 내무부 훈령이 △수용자들의 신체의 자유 및 거주 이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여 과잉금지원칙(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에 위반되고 △신체의 자유를 법에 근거하지 않고 침해하여 적법절차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봤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87년까지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산에서 운영된 부랑아수용시설이다. 감금ㆍ폭행ㆍ성폭행 등의 범죄 및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최소 513명(공식 확인)의 원생이 사망했다. 검찰이 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을 불법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라며 특수감금 등에 대해 무죄 선고했다. 박 원장은 횡령 혐의로 징역 2년6월형만 살고, 2016년 숨졌다. 이 사건은 올 4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수사를 권고하며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9월에는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문 총장에게 비상상고 권한 행사를 권고했다.
이날 문 총장의 비상상고권 행사에 따라 형제복지원 사건은 무죄 판결이 나온 지 29년 만에 다시 재판이 이뤄지게 됐다. 비상상고에 따른 재판은 대법원에서 단심제로 이뤄진다. 대법원은 검찰총장의 비상상고에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무죄를 선고한 원래 판결을 파기할 수 있고, 이유 없다고 판단되면 기각할 수도 있다. 다만 비상상고 재판의 효력은 법령의 해석ㆍ적용을 바로잡는 의미만을 가질 뿐 이미 무죄를 선고 받은 피고인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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