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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정치부패와 공화주의

입력
2018.11.23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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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정치부패는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적 지위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 정치부패는 주로 경제주체들이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 공적 영역을 침범하거나 공권력이 경제영역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들 때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영역 사이의 상호 침범과 결탁이 매우 체계적이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최근에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그리고 국회를 비롯한 국가기관들의 특별활동비 유용은 뿌리 깊은 정치부패의 일단을 보여준다.

정치영역은 공동체 전체의 번영과 시민의 복지를 위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영역이다. 반면에 경제적 시장은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이 두 영역은 그 성격과 작동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시장의 이윤추구 논리가 공공영역에까지 침투하여 정책과 입법의 공공성을 훼손할 때 정치부패가 발생한다. 국가의 공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됨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보는 집단과 부당한 피해를 입는 집단이 발생한다.

장기적으로 정치부패는 경제는 물론 정치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군사정부 시절 권력자들이 대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는 대가로 엄청난 특혜를 보장해주는 거래가 횡행했는데,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와 분배구조는 매우 기형적으로 형성됐다. 시장의 왜곡과 기업의 부실은 정치권력의 개입을 통해 일시적으로 무마되는 듯 했지만, 결국에는 1997년의 외환위기로 그 모순이 폭발하여 전 국민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정치부패는 정치 위기도 심화시킨다. 만성화된 정치부패는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불러일으켜 정책과 입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탈정치화시킴으로써 민주적 활력을 위축시켜버린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의 불평등을 정치 영역에 전이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토대를 침식한다.

정치는 다양한 국민들의 관심과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하여 공동선을 추구할 때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럴 때만이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자유시장경제가 조장하는 사회의 분열을 완화시킬 수 있고,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한 정치공동체의 시민이라는 연대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깨끗한 민주정치는 국민총생산이나 흑자 규모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국력의 핵심요소다. 따라서 이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정치를 사익추구 도구로 삼는 정치부패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공공의 적이다.

이념적ㆍ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대의민주주의는 정치부패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신성시하고 공동선보다는 사적 이익을 앞세우는 개인주의가 공권력마저도 사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인식하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율성, 상호주의, 극기 등 다양한 덕목을 담고 있는 자유주의에 정치부패의 모든 혐의를 씌우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질될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 때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이용하려는 유혹이 거세지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공화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와 달리 공화주의는 공동선과 시민의 덕성을 강조한다. 투철한 애국심과 공공정신으로 무분별한 사익 추구를 막고, 국민의 의지가 결집된 헌법과 법률의 지배를 통해 정치부패를 방지하는 것이 공화주의의 핵심이다. 공화주의에는 시민의 정치참여를 강조하는 전통(고대 아테네의 시민적 인문주의), 세력균형 및 견제와 균형 원리에 입각한 정교한 권력구조와 법의 지배를 통해 자의적인 지배를 막는데 역점을 두는 전통(로마의 공화주의),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조화시킨 전통(미국 건국기의 자유-공화주의) 등 다양한 흐름이 있다.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화주의는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앞세우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특히 위정자들과 공직자들에게는 엄격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공공정신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칠 수 있고, 정치공동체를 만인의 호혜적인 삶의 터전으로 가꾸고자 하는 사명의식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의 저자이자 공화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는 “나는 내 영혼보다 내 조국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적 대부였던 루소도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실현된 정치공동체 건설을 위해 ‘일반의지’ 형성을 강조했다. 시민들의 가슴에 싹튼 일반의지는 협소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특수의지’를 통제함으로써 정치공동체가 시장사회나 계급사회로 타락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한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만드는 것은 헌법조항도 정교한 권력구조도 아니다. 그것은 ‘일반의지’로 ‘특수의지’를 통제할 수 있고, 정파적 이익을 초월하여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시민들과 공직자들의 위대한 공공정신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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