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재테크인가 기본권인가]
대출 등 동원해도 국민 24.7%는 무주택 못 벗어나
‘내 집 마련’ 성공하면 평수 늘려 ‘집 가치 높이기’
최종 퀘스트에 진입한 이들은 오피스텔 등에 도전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집은 이제 “얼마나 빨리 소유하고, 어떻게 부의 축적과 확장으로 연결해 나가냐”는 개념의, 이른바 퀘스트(Questㆍ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임무 또는 행동)로 존재한다.
생산가능 인구가 돼 독립 거주인으로 사회에 나서면서 시작되는 이 치열한 퀘스트 경쟁은 어렵게 ‘내 집 마련’이란 초급 단계를 완수해도 평수 늘리기로 점철된 중급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최종 퀘스트는 더 이상 집 평수를 늘릴 필요가 없는데도 집의 자가 증식을 추구하는 투자 단계로 귀결된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인정하기 불편해 하는 집을 두고 벌어지는 퀘스트 게임은 살벌하다. 정부의 ‘2017년 주거실태 조사’로 파악된 각 퀘스트 별 핵심 키워드를 정리했다.
◇초급 퀘스트, ‘내 집 마련’ 종자돈 만들기
한국인들이 집이라는 퀘스트에 진입하는 때는 독립하는 순간이다. 이르면 고등학교 졸업 후인 10대 후반, 통상은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중반부터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된다. 최근에는 취업난이 심해지며 30대 초중반을 넘어 출발선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출발선이 모두에게 동일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쉽게도 부모 등에게서 물려받은 주거 자산이 이미 확보된 사람들은 이 퀘스트를 아예 건너 뛰기도 한다. 초급 단계를 거쳐야 하는 사람들도 주거 자산이 일부 약속 혹은 확보됐는지 여부에 따라 출발선이 상이하다. 100m 달리기를 예로 들면 주택 매매 및 전세자금의 가족 등 외부 지원 비율(%)에 따라 70m에서 달리기를 시작할 수도, 30m에서 쫓아가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사회적 자산이 ‘0’에 가까운 이들은 순수하게 0m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난해 결혼 전 한국 청년 가구의 자가 주택 보유 비율은 19.2%에 불과했다. 나머지 청년 임차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도 월세 비중이 71.1%로, 전체 가구의 월세 비중 평균(60.4%)보다 높았다. 10명 중 8명이 ‘내 집 마련’이란 초급 퀘스트를 거쳐야만 하고, 이들 중 70% 이상은 종자돈이 없는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청년 가구의 45.1%가 “전ㆍ월세 자금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할 정도로, 집을 갖기 위한 최소 자금 마련에 힘들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직과 대출, 배우자와의 자산 통합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결혼 직전 내 집 마련이라는 퀘스트에 성공한 비율은 44.7%에 불과했다. 남은 55.3%의 초급 퀘스트 실패자들 가운데 67.8%는 그나마 전셋집을 구해 퀘스트 통과 가능성을 다소 높였지만 남은 32.2%는 반전세나 월세를 전전하며 반등을 노려야 했다. 신혼부부 가구의 43.4%가 가장 필요한 부분으로 ‘주택구입자금 대출 지원’을 꼽은 이유다.
슬픈 현실은 한국인의 24.7%가 결국 자기 소유의 집을 한번도 가지지 못한 채 퀘스트 실패자로 삶을 마감한다는 데 있다. 60세 이상 고령층의 75.3%만 그나마 자신의 집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들 중 36.6%는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령층의 노후주택을 개보수하는 작업을 확대하면서, 이들 주택을 담보로 임대주택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연금형 희망나눔주택’ 사업도 내년 본 궤도에 오를 경우 주거 질은 좀 더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노년까지 내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임대주택 공급 대상자를 현 2만 가구에서 더 늘려가겠다는 방침이다.
◇집 늘리기 이어 최종 퀘스트는 ‘투자’
내 집이 일단 작게라도 생겼다면 곧 바로 이어지는 중급 퀘스트 ‘평수 늘리기’가 시작된다. 지난해 한국 전체가구의 주택 평균 거주기간은 8년이었다. 임차 가구는 3년4개월 정도 한 집에 머물렀고, 자가 가구는 이보다 4배 가량 긴 11년1개월을 거주했다. 이사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집을 가진 이들이 주거 시설이나 주택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집을 옮기는 형태(37.1%)였다. 22.2%는 시설과 설비가 더 양호한 집, 이른바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어 직장과 가까운 도심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사한 비율이 10.3%,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이동이 2.9%, 공원 녹지 등 주거 환경 향상을 위한 이동이 1.7%였다.
이렇게 내 집 마련과 ‘주택 업그레이드’가 끝나면 ‘부동산 투자 퀘스트’가 마지막으로 주어진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예적금, 보험, 채권 및 각종 금융투자상품에 예치된 자산의 합) 10억원 이상 보유 개인들이 꼽은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는 국내 부동산(29%)이었다. 또 앞으로 부동산 자산을 늘리겠다는 의견이 35.5%, 유지하겠다는 대답도 59.3%에 달해, 부동산 투자에 대한 맹신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보편적인 아파트 투자 방식도 매번 바뀌고 있다. 현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와 대출 강화 등 부동산 억제 정책으로 재건축 아파트 투자나 갭투자(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의 매매 가격과 전세금 간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는 전 정권 때보다 다소 줄었다. 그러나 인기 지역의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려는 투자는 더 활발해졌다.
최근 수치가 줄긴 했지만 정부가 권장하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한 공식적인 부동산 투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토부의 ‘임대사업자 및 등록 주택 현황(10월29일 기준)’에 따르면 전체 등록 임대사업자는 36만명, 등록 임대주택은 105만가구다. 특히 임대사업자 상위 10%가 전체 등록 임대주택의 57%를 소유하는 등 부동산 부의 편중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사업자 1인당 평균 주택 등록은 14채였지만, 상위 1%의 임대주택 보유량은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46채였다.
최종 퀘스트에 진입한 이들의 부동산 부 확장은 아파트 투자 일변도에서, 꼬마빌딩 건축이나 임대ㆍ수익형 오피스텔, 셰어하우스 투자 등으로도 계속 확장되는 모양새다. 한 수익형 부동산 투자회사 대표는 “9ㆍ13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과거 갭투자 주요 세력이자 부동산 업계의 ‘끝 차 대장’으로 불리던 ‘강남 사모님’ 등 부동산 자산가들이 꼬마빌딩과 오피스텔 투자를 집중적으로 문의하고 있다”며 “부동산 정책이 아무리 강경해도 한국인의 집에 대한 욕망과 투자 의지가 이보다 훨씬 더 공고해 부동산 투자를 향한 열망을 막을 순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집을 장만하는 게 아니라 '늦지 않게 집을 마련해 이를 바탕으로 돈을 불려야만 한국 사회에서 버틸 수 있다'는 강박이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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