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재테크인가 기본권인가]
30억대 고가 한강변 아파트 ‘그들만의 리그’
“일류 셰프가 조식 서비스… 정부 규제 무관”
월세 3만원 비닐하우스선 연탄도 감지덕지
“여긴 세상의 끝… 작은 불 나도 다 죽어”
※편집자주 :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따뜻한 보금자리여야 집이 2018년 한국 사회에선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질하며 이상 폭등했다. 누군가에게는 위험에 노출된 채 새우잠을 청해야 하는 곳인 반면 누군가에게는 신분 상승과 욕망의 종결자가 돼 버렸다.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어야 하는 지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
#A “아리팍(아크로리버파크의 줄임말)이 30억원도 넘을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는 동안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향후 투자 가치도 높다면 지금 당장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지난해 초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강변 신축 아파트인 ‘아리팍’으로 이사 온 최모(53)씨는 3.3㎡ 당 1억원 가까운 가격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한국일보 기자의 질문에 최근 이렇게 답했다. 이 아파트는 정부의 9ㆍ13 대책 발표 전날 공급면적 기준 112㎡(전용 84㎡)형이 31억원에 거래됐다. 실제로 주민들은 이 아파트가 그만한 가격을 주고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대기업 2차 협력사를 운영하고 있는 최씨는 “충분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선 삶의 격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매일 아침 아파트 단지 바로 앞 반포한강공원으로 나간다. 30분 가량 달린 후 아파트 단지 안 피트니스센터에서 근력 운동을 30분 정도 더 한 뒤 지하 사우나에 들러 몸을 풀어준다. 이어 1층 티하우스로 올라가 유명 호텔 총주방장을 지낸 셰프가 내놓는 조식 서비스를 즐긴다. 주민들은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사우나, 골프연습장 등 스포츠 시설과 한강 조망이 가능한 하늘도서관, 북카페, 티하우스 등 다양한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를 못 느낀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고려한 조식 서비스와 철통 같은 보안 시스템은 자랑중의 자랑이다. 아무나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사실 보안시스템은 고급 주거단지가 갖춰야 할 기본 중 하나다.
최씨가 고급주택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비슷한 경제적 수준이나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남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고급 주택은 일단 이사를 오면 집을 팔고 나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입주민 구성원의 변동도 크게 없는 편이다. 한번 들어오면 평생 동안 사는 경우도 많다.
최씨는 그러나 이 모든 장점 중에서도 아리팍의 최고 강점으로 ‘희소성’을 꼽았다. 그는 “서울 강남권 한강 주변 신축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아파트가 얼마나 되느냐”며 “수요가 끊이지 않는 한 결국 가격은 계속 오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로케이션’(위치)인데 서울에선 결국 강남, 그것도 한강 주변이 최상의 로케이션”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심지어 고가 주택일수록 희소가치 때문에 오히려 정부의 규제나 경기의 영향을 덜 받아 투자하기에는 더 좋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내 최고급 아파트로 꼽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의 전용면적 208㎡형도 9ㆍ13 대책 등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3층이 42억원에 팔리며 이 주택형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남더힐 208㎡형의 지난해 최고가는 37억5,000만원이었다. 이후 보합세를 보이다 지난 1월 40억7,000만원을 거쳐 8월 41억5,000만원에 이어 계속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분양시장에서도 고가 아파트는 불황을 모른다. 중도금 대출이 안돼 최소 현금 10억원은 보유하고 있어야만 청약을 해 볼 수 있는 서초구 ‘래미안리더스원’의 분양 경쟁률은 41.8대1이나 됐다. 특히 한 가구를 모집하는 펜트하우스(238㎡)의 경우 분양 가격만 39억원에 이르고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최소 31억원의 현금을 필요한데도 17명의 청약자가 몰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는 지난해 27만8,000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총 646조원이다. 1인당 평균 23억2,000만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셈인데, 국내 전체 가계가 보유한 총자산의 17.6%를 차지했다.
#B “여긴 그냥 세상의 끝이여. 더 갈 곳도 없고 갈 힘도 없는 이들에게 집은 남은 목숨을 부지하는 곳일 뿐이제. 대한민국에서 여기보다 더 싼 곳은 없어.”
지난달 22일 새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 인근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만난 한 노인에게 “어르신께 집이란 뭡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대답이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웠던 이날 90여가구 150여명이 사는 이곳으로 들어서자 다 탄 뒤 쌓여있는 연탄재가 가장 먼저 반겨줬다. 좀 더 들어가자 ‘토지주 허가 없이 상수도를 설치하거나 비닐하우스를 증ㆍ개축 할 경우 민ㆍ형사상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문도 눈에 띄었다. 그 뒤론 주황색 외관이 선명한 버스회사 종점의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다수 주민의 난방 수단이 연탄 보일러란 점을 감안하면 화약고 옆에 성냥불이 매일 나뒹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소방도로도 없다.
장은숙 마을자치회장은 “매일 두려움에 떨면서 살고 있지만 매달 3만원을 땅 주인에게 내는 여기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어 떠날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80%는 직업이 없는 70대 이상 고령층이고, 이들 중 절반은 지병으로 거동도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민 대부분이 매달 20여만원의 정부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처지여서 맘 놓고 물과 전기를 쓸 수도 없다.
이 곳에서 20년을 살았다는 A(73)씨는 “일주일에 두 번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지만 병원비도 교통비도 없어 그냥 버틸 때가 많다”며 “옆집은 그나마 연탄 보일러라도 있지, 우리집엔 그것도 없어 이번 겨울을 살아서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 집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B씨도 3년 전 겨울 추위 속에서 숨졌다. B씨 집에도 연탄 보일러가 없었다.
비닐하우스 내부는 외관보다 더 열악했다. 청소 일을 하러 새벽에 나갔다는 한 할머니의 집 문은 열려 있었다. 텅 빈 2평 남짓 공간엔 연탄 보일러만 나홀로 미미한 온기를 내고 있었고 방 곳곳엔 불에 잘 타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마을 어귀에서 폐품을 정리하던 C(68)씨는 “최근 불이 났다는 종로의 고시원은 그래도 건물 외관은 갖춘 곳이지 않느냐”며 “여긴 판자와 비닐로 만든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작은 불이라도 나면 다 같이 죽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러한 비닐하우스촌과 판잣집, 고시원 등 주거 사각지대에 사는 극빈층은 2016년 기준 37만명에 달했다. 2005년 5만4,000명에서 10년 새 7배로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달 ‘취약계층 및 고령자 주거지원 방안’을 통해 “주거급여 수급자를 직접 발굴해 입주 희망 여부를 조사한 뒤 공공임대 무보증금 월세제도 및 분할 납부제를 활용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500만원 수준인 보증금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작 대상인 주거 극빈층의 반응은 냉담했다.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16년 째 살고 있다는 D(70)씨는 “정부가 우릴 먼저 도와주겠다고 온 것을 본 적도 없다”며 “아무리 보증금을 분할해도 한달에 20만원 넘게 돈을 내야 할 텐데, 그 돈을 어디서 구한다는 말이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의 LH 서민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최소 보증금 50만원과 매달 임대료 24만원(분할 보증금 포함)을 내야 한다.
비닐하우스촌 입구를 다시 돌아오자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인 ‘전원마을’에 걸 맞는 고급 주택가가 줄지어 있었다. 3.3㎡당 2,000만원도 넘는 주택들은 대부분 100평대 부지에 관상용 정원을 갖추고 있었다. 인근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달 90평대 전원마을 고급 주택 2채가 각각 최고가인 22억원에 팔렸다“며 “앞으로도 가격은 더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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