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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파트 역사는 1960년대부터다. 당시 정부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이촌향도(移村向都) 현상이 심해지자 서울 인구 증가에 대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기 시작했다. 1961년 10월 착공해 2달 만에 완성한 마포아파트는 아파트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67년부터는 16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러한 아파트 역사의 이면엔 철거민의 아픔이 있었다. 70년대 아파트 개발로 인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무허가 건물 철거가 본격화하면서 보금자리를 잃게 된 철거민들은 실의와 좌절에 빠졌다. 철거에 대한 보상으로 아파트 입주 추첨권이 나왔지만 당첨 확률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추첨에 떨어졌을 때 주어지는 철거 보상금은 70년대 후반 당시 이들의 평균 집값인 300만~400만원의 10%도 되지 않는 20만원에 불과했다.
어렵게 추첨에 성공해 아파트 입주권을 따내더라도 대부분의 철거민은 아파트를 매입할 경제적 능력이 없어 입주권을 투기 브로커들에게 헐값으로 팔았다. 자연스럽게 철거민들은 또 다른 무허가 판자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러한 철거민의 신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투기 광풍은 나날이 거세졌다. 아파트를 소유한 이들은 단기간 부자가 됐다. 정부의 규제에도 아파트와 택지 가격은 계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76년 12월 분양가 800만원이었던 서울 잠실의 한 고층아파트는 2년여만에 최고 2,000만원까지 올랐다. 서울 여의도 아파트 값은 71년 3.3㎡당 20만원에서 82년 400만원까지 치솟았다.
집 없는 사람들은 주거불안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집값이 폭등하자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전ㆍ월셋값 인상을 요구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세입자들이 세상을 등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90년 4월 서울 강동구에서 살던 일가족 4명은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통보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은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질 것”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정부가 도시 빈민들을 판잣집에서 내쫓기 시작한 60년대부터 이미 50여년이 지났지만 현재도 개발과 투기의 대상이 된 집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 문제는 여전하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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