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치를 담은 기술과 디자인, 슬로워크 권오현 대표
※ 인터뷰에서 ‘아니요’를 찾아보세요. 크고 작은 ‘아니요’로 자신의 오늘을 바꾼 사람들을 만나보는 한국일보의 인터뷰 연재입니다.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IT기술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20대 땐 운동을 해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많았는데, 저는 ‘그 옆에서 기술을 열심히 해야겠다’ 마음 먹었어요.”
게임 개발을 꿈꾸던 고등학생이었고, 우연히 진보정당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대학생. 그는 일단 큰 기업에서 기술을 제대로 배우기로 했다. 2003년 대형 시스템통합(SI)업체에 들어가 시스템을 익혔고, 미디어를 활용한 정치참여에 대해 알고 싶어 다음(Daum)에 입사(2006년)했다. 온라인 토론과 국민청원의 효시인 다음 ‘아고라’ 2차 버전 개발리더였다. 하지만 2009년 ‘광우병 사태’ 당시 정부는 네티즌들이 활발히 의견을 나눴던 아고라를 사태의 온상지로 지목했고, 여러 안팎의 사정들로 그는 다음을 떠났다.
삼성이 궁금해 제일기획에 입사, 광고 플랫폼 만드는 일도 했다. 하지만 퇴근 후엔 시간을 쪼개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 등에 기술 자문을 해주고 플랫폼을 만들어줬다. 결국 창업을 결심했다. “큰 기업 다니면서도 이 일 하는 거 보니까 한 번은 제대로 해야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겠다 싶었어요. ‘망하면 빨리 그만두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2013년 IT솔루션기업 ‘UFO팩토리’를 창업했다. 시민사회 영역에 디지털 플랫폼과 브랜드 정체성 등을 만들어주는 회사였다. 2016년엔 역시 시민사회 영역의 디자인솔루션기업 ‘슬로워크’와 합병했다. 새 회사 이름은 슬로워크를 따랐다. 이들이 만들어온 변화, 꿈꾸는 변화는 무엇일까. 프로그램 개발자이자 기획자인 권오현(42) 슬로워크 대표를 지난달 20일 서울 성수동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기술과 소셜 섹터의 만남
- 슬로워크는 어떤 회사인가요.
“조직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기술로서의 디자인, IT를 만들고 보급하는 회사에요.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단에 필요한 디자인, 기술적 솔루션을 해주면서 시작한 곳이에요.”
- ‘솔루션’은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로고나 홈페이지, 브로슈어 등 디자인 업무부터 캠페인 등을 같이 기획하는 거에요. 단순 홈페이지를 넘어서 기술적인 서비스도 같이 만들고요. 이메일 마케팅, 조직 내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 정보 축적을 위한 아카이빙 기술도 제공해요.”
- 시민단체나 사회적 기업과 주로 일하나요.
“태생은 소셜 섹터가 기반이었지만, 지금은 일반 기업, 정부 기관 일도 해요. 삼성전자 환경페이지, 포스코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도 우리가 만들었어요. 가치나 철학을 담은 디자인이나 개발을 하고 싶을 때 우리를 찾아와요. 여전히 기술을 도구로써 바라보는 경향이 많지만, 우리는 기술의 결과물이 주는 영향에 관심이 많아요.”
합병 전 두 회사, UFO팩토리와 옛 슬로워크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UFO팩토리는 의상 대여 사회적기업 ‘열린 옷장’, 진로 탐색 지원 소셜 벤처 ‘열정대학’ 등 창업 3년 만에 100개가 넘는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 등의 디지털 플랫폼을 기획, 개발했다. 옛 슬로워크 역시 세이브더칠드런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유니세프 ‘아우인형’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인지도 상위 10개 비영리 단체 중 90%가 옛 슬로워크의 디자인 솔루션을 거쳤다. 한번쯤은 접한 적 있는 웹페이지나 캠페인들이 두 회사의 작품들인 것이다.
소셜 섹터 디자인, IT기술 분야에서 유일하게 20명 이상의 규모를 가진 곳이던 UFO팩토리와 슬로워크는 2016년 살림을 합쳤다. “’이 일을 잘 하려면 규모를 키워야겠다’는 동의가 있었어요. 디자인, 기술 기반 회사가 합쳐지면서 이제 모든 걸 할 수 있게 됐어요.”(권 대표)
합병 후 슬로워크는 양진호 위디스크 전 회장의 전횡을 밝혀낸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물권단체 ‘케어’의 브랜드 정체성 및 웹사이트를 개발했다. 또 50대 이상 서울시민을 위한 통합정보제공 채널 ‘서울시50플러스재단 포털’도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소셜 섹터가 그렇듯, 시작이 쉬웠던 건 아니다. 옛 슬로워크 창업자인 임의균 현 슬로워크 CCO(Chief Creative Officer)는 2003년 회사를 창업하고도 투잡을 뛰고 찜질방 생활을 하며 회사를 겨우 유지했다고 한다. UFO팩토리도 투자, 정부지원 없이 시작했다.
- UFO팩토리의 시작은 어땠나요.
“회사 다니며 번 돈으로 디자이너 2명과 함께 시작했어요. 지인의 빈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했는데, 1년 만에 구성원이 10명이 됐어요.”
- 금방 성장한 것 아닌가요.
“당시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들이 웹페이지 등을 잘 만들고 싶어 했지만 일을 맡아주는 개발사가 없었어요. 비용이 안 맞으니까요. 개발자들도 이런 쪽 일을 잘 모르니까 소통도 힘들고요. 자원봉사자들이 웹 개발을 조금 해주고 망가지고, 악순환에 빠져있던 곳이에요. ‘우리가 제대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면서 빨리 성장했어요.”
- 그럼 단가를 어떻게 맞췄나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기술을 빨리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요. 그걸 내부에 교육했어요. 두 번째는 비용을 최소화 시켰어요. 사무실 없이 원격 근무하고, 컴퓨터도 예전 꺼 쓰고요. 당시에는 일반 개발사가 부른 비용과 저희가 실제 받은 비용이 10배 넘게 차이가 나기도 했어요. 일반 개발사가 1억 넘게 받는 걸 500만원 미만에 해줄 때도 있었고요.”
- 혹시 구성원 처우도 좋지 않았나요.
“아니요. ‘구성원 월급을 줄이지는 말자’라는 원칙이 있었어요.”
◇ 전 구성원 원격근무, 반려견 돌봄 휴가
슬로워크 구성원은 총 63명.(슬로워크는 ‘직원’이 아닌 ‘구성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원격근무를 한다. 이들 중 다수는 국내에서 일하지만 올 초 디지털 사업부는 태국 코사무이에서 해외 원격근무에 도전하기도 했다. 일본의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권 대표 역시 2주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한다. 사무실에도 권 대표의 자리는 없다. 고정석이 있는 구성원은 20명 미만, 집이든 사무실이든 각자 편한 곳에서 일한다.
- 원격 근무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창업 초기엔 사무실 비용을 아끼기 위한 것도 있었어요. 두 번째로는 출퇴근을 하면서 버리는 시간과 스트레스가 인격적인 모욕감을 주는 것 같았어요. 그런 상태에서 일하고, 다시 돌아가는 건 비효율적이고요. 그래서 저는 늘 직장 근처 5분 거리에 집을 구했어요. 구성원들이 일 외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기 삶의 중심을 잡고 일만 열심히 할 수 있게 하려고 해요.”
- 장점도 많겠지만 삶과 일이 분리되지 않아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원격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먼저, 일과 생활을 엄격히 구분하는 훈련을 해야 돼요. 해외에서는 일할 때 신는 슬리퍼를 따로 정하라고도 해요. 두 번째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동료나 친구를 만나는 등 소통이 필요해요. 고립감이 들 수 있어서요. 마지막으론, 다른 동료가 볼 수 있게 업무를 잘 정리하는 습관 등 면 대 면과는 다른 온라인 소통 방식을 배워야 해요.”
- 개발자를 발리 등 해외에 보내는 게 꿈이라고요.
“지금은 못 하고 있는데, 내년이나 내후년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왜 보내려는 건지요.
“서울에서 일하는 게 너무 괴로워요. 미세먼지도 그렇고. 제가 다음에 있을 때 제주에서 일해보니 오히려 생산성이 더 올라가요. 삶에 대한 만족감, 회사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고요. 지금 멤버와 더 오래 일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서로 더 믿어야 하니까요.”
- 휴가 제도도 독특하던데요.
“자율 휴가에요. 법으로 정해진 1년 15일 연차, 그 이상으로 휴가를 얼마든지 쓰라는 거에요. 함께 일하는 사람과 협의가 되면요. 지난해에는 목표를 일찍 달성해 한 달 동안 휴가를 쓴 기획자도 있었어요. 해외에는 이런 자율휴가가 많이 도입되고 있는 추세에요. 사람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일을 관리하는 거죠. 3년마다 30일의 유급휴가를 주는 ‘안식월’도 있어요.”
슬로워크에는 아마도 국내 기업에는 유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려견 돌봄 휴가’도 있다. 한 구성원이 “반려동물도 가족”이라며 제안해서 생긴 제도다. 동료들끼리는 직함 대신 닉네임이나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른다. 업무에서 위계가 생기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 더 많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오아시스’
권 대표는 직접 민주주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소셜 벤처 ‘빠띠’의 대표이기도 하다. 정당을 뜻하는 프랑스어 ‘Parti’에서 따온 이름으로, 정치(Parti)에 파티(Party)처럼 즐겁게 참여(Participation)한다는 의미. 일상적인 것에 목소리를 내고 실시간 토론을 벌이며, 캠페인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빠띠의 일회용품 모니터링 모임인 ‘어쓰’가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플라스틱 컵 사용 자제 메일을 보내 긍정적인 답변을 받는 등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지난해부터 청와대 국민청원이 뜨거운데, 어떻게 보세요.
“사람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을 때 기대했던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통령이었고, 국민청원이 그 역할을 했다고 봐요. 이제 대통령과의 얘기는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시민들은 법관, 국회의원, 기업과 직접 얘기하고 싶어하거든요. 소통의 폭이 넓어져야 하고, 소통을 넘어 시민들이 참여해 같이 결정하고, 실행까지 하는 제도적인 보완과 기술 개발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건 시민들이 만들어갈 수도 있고, 국가에서 해줬으면 하는 기대감도 있어요.”
- 빠띠도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든 건가요.
“네. 빠띠에서는 민주주의가 정보공개 단계에서 시작해 소통ㆍ국민 참여를 거쳐, 권한 분산ㆍ협력ㆍ위임ㆍ자치로까지 나아가야 완성된다고 봐요. 지금은 대통령과 얘기하는 것에만 빠져있는데,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 앞으로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요.
“세상이 더 평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한 장치가 3가지 있어요.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시대에 맞는 기술력을 갖추는데 제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우리는 충분히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누리고 있지는 않아요. 빠띠가 공통 자원을 모두를 위해서 쓸 수 있게 정치력을 발휘하는 기반이 되기를 바라요. 마지막으론, 기술 혁신을 해서 더 많은 부가가치가 생기면 만든 이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누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이걸 하면 세상이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요.”
그는 20대 초반부터 ‘시스’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오아시스의 약자라고 한다. 세상에 작은 오아시스 하나를 만들고, 그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해 나갈 수 있게 하고 싶어서였다. 시스라는 이름으로 20년 가까이 살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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