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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 식탁] 초밥 배터지게 먹고… 아 이런 죄책감이라니

입력
2018.12.12 04:40
수정
2018.12.12 08:3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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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내 어머니는 웬만해서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 택시를 타면 몸이 죄를 짓는 것 같단다. 택시를 탄다는 것은 게으름에서 비롯된 쓸데없는 사치 행위. 그래서 식당일을 하는 지난 2년 동안, 인천에서부터 연남동까지 마을버스를 두 번 전철을 두 번 갈아타며 출퇴근을 했다. 환승할수록 이득이라는 독특한 셈법을 내세우기까지 하면서. 딱 한 번 일이 아주 늦게 끝난 날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이미 비용을 지불한 택시를 중간에 세운 다음, 집 근처까지 가는 심야버스로 갈아탄 다음, 밤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환한 택시비로 다음날 계란 두 판을 사왔다. 계란을 들고 오던 어머니의 그 의기양양함이란.

내 벗 중 하나는 밥을 남기면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다. 콕 집어 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차려진 밥상 말이다. 아무리 양이 많아도 맛이 없어도, 제 몫으로 나온 음식은 다 먹어야만 마음이 놓인다 했다. 어린 시절 배를 곯을 만큼 궁핍하게 산 것도 아닌데, 다 먹어야만 만화책을 보게 해준다고 누가 윽박지른 적도 없는데, 그 근원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매번 마음 편한 대가로 몸의 부대낌을 감수해야 했으니, 대야만한 그릇에 담긴 우동을 남김없이 싹싹 다 비우고 난 다음, 출렁이는 배를 끌어안고, 왜 그걸 다 먹었을까 자책하면서, 하염없이 걷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건강에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죄책감이다.

내 할머니는 밥을 남기면 벌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살았던 사람 중의 하나다. 쌀에 대한 존중과 경외로 비롯된 경건한 마음,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다. 본인이야 밥을 조금 퍼서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그만이지만, 식구들에게 내가 한 밥 남기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남은 밥을 활용해 다른 음식을 만드는데 선수가 되었으니, 할머니 집에는 식혜가 떨어진 적이 없고, 밥알을 씻어 말려 튀겨 만든 강정 솜씨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죄책감이 만들어낸 새로운 요리의 경지. 거기에 검은콩만 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내 개인적인 취향이고.

이들 셋과 각각 초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우선 내 어머니. 광화문 한복판 공영주차장에 세워 놓은 주차비 걱정. 초밥은 맛있다만 주차비가 더 나오겠다 어서 먹고 가자 구시렁구시렁. 이왕 나들이 나온 거 느긋하게 밥 먹고 산책도 하고 즐기다 가면 좀 좋아? 밥 사주는 사람 민망하게 투덜투덜. 그래도 초밥은 맛있구나 야, 이왕이면 참치 뱃살, 전복도 하나 먹자. 물론 산책은 못 했고, 주차비를 계산하며 초밥 한 접시 값이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할머니와는 호텔 뷔페에 함께 간 적이 있다. 직접 구워 주는 갈비나 양고기, 광어 뱃살회 대게찜 코너는 다 지나쳐, 그 밥에 그 나물 호박전에 김치 굴비구이를 가득 담아 오시니, 호텔 입장에서는 이런 호구 손님이 따로 없을 것. 그에 비해 나란 사람 오로지 본전 생각, 할머니가 손해 본 만큼 보충할 생각뿐. 초밥에 회만 살짝 거둬먹고 밥은 3분의 2쯤 남긴 채 다시 스시 코너로 직행, 이번엔 할머니 몫까지 챙겨갈 테다 버티고 서서 갈비며 양고기를 두 손 가득 들고 갔더랬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내가 밀쳐두고 간 스시 접시를 당겨와 남은 초밥에 나물을 얹어 자시고 계신 게 아닌가. 새콤하니 맛나다 하면서. 행여 손녀가 벌받을까 대신 그 죄를 목구멍으로 우겨넣던 내 할머니. 덕분에 제가 그리 큰 벌은 안 받고 살고 있습니다요.

내 벗과의 회전초밥집은 무사했느냐. 물론 무사하지 않았다. 주는 대로 다 먹는 벗과 식탐 많은 내가 의기투합하여 그날 접시 쌓기의 최고 기록을 세웠으니. 그날 우리는 각자의 죄책감을 배에 넣고 광화문 일대를 걷고 또 걸어야만 했다. 내가 내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많이 먹었나. 내 배는 왜 배부름을 모르나. 육식에 대한 근본적인 죄책감도 아니고, 아 이런 죄책감이라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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