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안에 모든 것이 있고, 혁명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1959년 1월 1일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는 친미 군사 독재의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급진적 사회주의 개혁 조치들을 단행하며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좌파 벨트의 맏형으로 떠오른다. △전면적 농지개혁 및 토지 배분 △석유ㆍ전기 등 기반 산업과 외국 기업의 국유화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이 실시됐다.
반면 혁명에 반대하는 세력과 자본주의 사상은 철저하게 배척했다. 언론 자유는 억압됐고, 정치적 반대자들은 줄줄이 숙청됐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먹고사는 게 어려워진 평범한 시민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갈 사람은 언제든 떠나도 좋다”며 1980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국외 탈출마저 허용했다. 15만명에 달하는 쿠바인들이 고국을 등졌다. 피델에게 자유와 인권보다 앞선 가치는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피델이 2006년 지병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쿠바는 조금씩 변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권력을 이어받은 그의 동생이자 혁명동지인 라울 카스트로(87)는 △자영업 및 주택 매매 허용 △정치범 석방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등 개혁 개방의 물꼬를 텄다.
또 라울은 지난 4월 장기집권에 대한 반발 여론을 의식해 대통령직에 해당하는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물러나고, 부의장을 맡고 있던 미겔 디아스카넬(58)에게 자리를 넘겼다. 물론 라울이 막후에서 그림자 통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59년간 이어졌던 카스트로 형제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22일 쿠바는 새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밑그림도 내놨다. 1976년 헌법이 제정된 이래 42년 만에 개헌안을 발표한 것이다. 사유재산 및 개인 사업을 보장하고, 국가평의회 의장 임기제한 및 권력 분산을 위한 총리직을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개헌안은 내년 2월 24일 국민투표에 부쳐지는데 수개월간 대국민 의견수렴을 걸친 터라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60만명에 달하는 쿠바인들이 자영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헌법 개정은 상징적 의미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뉴욕 바루크 칼리지의 테드 헨켄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정치적 혼란을 억제할 자신이 있다면, 쿠바의 개혁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당초 의회가 마련한 초안에는 공산주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문구가 삭제됐지만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다시 삽입됐다. 이에 따라 새 헌법은 이전과 같이 공산당 1당 체제에 의한 통치와 국가에 의한 계획 경제 체제를 표방하고 있다.
유수암 팔라시오 의원은 개헌안을 발표하며 “진정한 혁명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것이 우리가 공산주의에 대한 열망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후 껄끄러워진 대미 관계 회복 등 난제는 수두룩하다. 새 개헌안과 함께 쿠바는 59년 만에 또 다른 혁명의 시기를 맞게 됐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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