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의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 도래
양적 확대보다는 오해와 불신 해소하며
시대 변화에 부합하게 새롭게 진화해야
혁신학교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에서 혁신학교 지정을 둘러싸고 서울시교육청과 예비 학부모들 사이에 불거진 심각한 갈등을 목도하며 느낀 소회다. 양적 확대에 연연하기보다 먼저 혁신학교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때가 됐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혁신학교 전국 확대가 탐스런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혁신학교는 2009년 도입된 이래 기존 학교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교육과정과 수업을 혁신하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 혁신학교가 교육의 본령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일부 학부모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제시한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때 혁신학교가 판교와 분당 등의 집값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중산층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최근 양적 확대 과정에서 혁신학교는 이전의 긍정적 평판을 많이 잃었다. 대신 혁신학교엔 학력을 떨어뜨리는 학교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교육열이 높은 중산층 거주지에서 기피 대상이 된 배경이다. 혁신학교도 할 말은 있다. 무엇보다 혁신학교가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 위주로 지정된 탓에 출발선이 다른데도 비교 과정에서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 혁신학교가 학력을 떨어뜨린다는 일관성 있는 실증적 근거도 없다.
다만 일부 혁신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아무리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을 받아들였더라도 심각한 문제로 여겨야 한다.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2030년경에는 사람들이 일생 동안 대여섯 번 이상 직업을 바꾸며 살아가야 한다. 평생학습을 운명이라 생각하며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학습능력을 구비해야 가능한 일이다. 기초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학생들에게 이런 학습능력을 기대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혁신학교는 기초학력 담보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언필칭 책임교육 공동체를 지향하는 학교가 아닌가. 이런 모토가 공허한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책임교육과 혁신의 중심에 기초학력 담보가 자리해야 한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해 아무리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이 실시되더라도 많은 학생이 기초학력 미달로 남는 건 교육의 실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시대 변화에 맞춰 혁신의 내용과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는 체험과 토론을 중시한다. 이 같은 활동에도 내실을 기하되, 독서와 운동에 배전의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혁신학교하면 바로 독서와 운동이 연상될 정도로. 독서와 운동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핵심역량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활동이기에 하는 얘기다. 독서와 운동은 학습능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창의력과 공감능력을 함양하는 데 특히 주효하다.
장기 종단연구를 통해 혁신학교의 교육 효과를 측정하는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연구 기간은 학생들이 노동시장으로 이행한 이후까지 포함하는 게 바람직하다. 혁신학교를 다님으로써 얻게 될 영속적 교육 효과는 학생들이 성인이 된 뒤에 본격적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혁신학교가 학력 저하를 초래하지 않음은 물론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데 분명한 강점을 가진 학교라는 점을 실증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혁신학교가 이런저런 오해와 불신을 말끔히 해소하고 멀리 보며 자녀가 궁극의 승리를 쟁취하길 바라는 학부모에게 선호되는 학교로 우뚝 서는 일과 직결된 사안이다.
좋은 평판은 포말처럼 부서지기 쉽고 손상된 평판은 회복이 어렵다. 좋은 평판에 비해 나쁜 평판은 훨씬 빠르게 전파되며 생명력도 질기다. 한때 혁신학교가 누린 긍정적 평판이 포말처럼 사라진 자리에 불신과 회의가 켜켜이 쌓이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춰 혁신의 내용과 방향을 명징하게 재설정하고 내실 있게 실천하는 혁신학교의 진화가 시급한 배경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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