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추락의 이유가 차고 넘치는 현실
상황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해 더 문제
교사 양성 및 승진 제도부터 일신해야
가끔 교직에 있는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 반듯하고 명민해 훌륭한 교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제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걱정에 마음이 많이 무겁다. 교권 추락에 대한 얘기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녹록지 않은 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을까. 혹여 깊은 회의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을까.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도 높지 않아 더 걱정이다. 교권이 예전 같지 않을 이유는 차고 넘치는 반면 반전을 위한 대안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예전엔 어떤 지역에서건 교사는 학력이 가장 높은 축에 들었다. 우리 사회에선 개인의 면면을 평가하고 위계를 설정하는 데 학력을 핵심 척도로 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교사가 학부모보다 ‘가방끈’이 길다는 사실은 교권 담보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그간 국민의 전반적인 학력이 크게 높아졌다. ‘가방끈’ 길이로 교권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과 교권 경시 때문에 많은 교사가 강남지역 근무를 기피하게 된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저출산 시대의 부정적 유산도 교권 추락에 일조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가 되면서 학부모의 불안감과 과보호 성향이 강해졌다. 애들이 쉬는 시간에 운동을 하다가 조금만 다쳐도 민원과 항의가 빗발친다고 한다. 애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학부모의 협력 대신 간단없는 간섭과 비판에 노출돼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과보호가 만연한 사회에선 밥상머리 교육도 실종될 개연성이 크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의 인권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으니 교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높은 기대 또한 교권 신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육의 가치는 본질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로 나뉜다. 공교육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반면 사교육은 교육의 도구적 가치를 중시한다. 반듯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바람보다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가 강한 사회에서 교사는 학원 강사보다 존중받는 게 쉽지 않다. 학원 강사가 체벌을 가하는 건 용인해도 교사가 회초리를 들면 가차 없이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가 많은 배경이다.
‘이상한 교사’의 존재가 교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교사가 전혀 교사답지 않은 행동 때문에 비난받는 일이 빈발한다면 교권을 존중하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떤 조직이나 기관에는 이상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학교도 예외가 될 순 없다. 10년 차 초등교사인 김현희 선생님은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검증된 건 아니지만 다른 조직에 비해 교직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이 더 자주 눈에 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다른 조직에 비해 교직 사회에 이상한 사람의 비율이 더 높은지 알 길은 없다. 다만 교직 사회가 이상한 사람도 일신을 의탁하기에 비교적 무난한 환경을 제공하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교사는 어지간한 흠결은 보호해 줄 평가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고 학생들은 교사의 말과 지시를 따르는 걸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교직 사회는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특성도 있다. 기업에 비하면 협업의 기회가 많지 않고 다른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평판이 중시되는 교직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측면도 갖는 게 사실이다.
외생적 요인에 교권이 추락하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자구적 노력을 통해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비상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사 양성 및 승진 제도에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교직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가르치는 일에서 벗어나 행정을 맡아야 사회적으로 더 존경을 받고 직업 만족도가 높아지는 풍토도 확 바뀌어야 교권 추락에 제동이 걸리게 될 것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