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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팅’이 뭐길래… 브렉시트에 흔들리는 세계 금융수도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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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팅’이 뭐길래… 브렉시트에 흔들리는 세계 금융수도 런던

입력
2019.01.28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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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구도심 '시티 오브 런던'에 있는 왕립거래소 건물.
영국 런던의 구도심 '시티 오브 런던'에 있는 왕립거래소 건물.

영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잠정 합의안이 영국 의회에서 부결된 지난 15일. 런던에 기반을 둔 영국 토종은행 ‘브라운시플리’의 프라이빗뱅킹 대표 가이 힐리는 EU 시민 고객 200여명에게 급전을 보냈다. “최악의 상황이 되면 은행 직원을 만나기 위해 직접 영국으로 건너와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EU 고객들에게 “유럽 대륙의 파트너 은행으로 계좌를 이전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사실상 자기 은행을 떠나라는 권고다. 힐리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간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를 기대하며) 대 고객 통보를 미뤄 왔지만 ‘노 딜 브렉시트’ 위험이 임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디데이(D-Day)인 3월 29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런던의 금융가 밀집 지역인 옛 도심 ‘시티 오브 런던’과 동부 신흥 비즈니스 구역 ‘커내리 워프’에 이른바 ‘패스포팅’ 실종 공포가 날로 커지고 있다. 패스포팅은 영국의 금융사가 다른 나라의 인허가 없이도 유럽 어디서든 영업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특히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이탈하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 금융사는 즉각 유럽 패스포팅 권한을 잃게 된다. 이미 런던의 다수 대형 금융사들은 조직 일부를 다른 유럽 대도시로 이동하는 ‘브렉소더스’에 나선 지 오래여서 세계 금융수도 런던의 위상 또한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패스포팅이 만든 금융수도 

27일 외신에 따르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금융가는 EU 출범 이래 특히 ‘유럽의 입구’ 역할로 한층 부각됐다. 패스포팅 덕분에 런던의 선진 금융기업들은 비교적 관대한 영국 규제당국의 감독만 받으며 유럽 내 다른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 이는 런던이 미국 뉴욕 월가와 글로벌 금융수도를 다툴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 조건 협상 기간인 지난 2년 동안 런던 금융가는 패스포팅을 유지하기 위해 “런던 특별구를 만들자”고 수시로 구애에 나섰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합의안이 통과됐다면 3월 29일 이후에도 잠정적 전환기가 시작돼 당분간은 현상 유지가 가능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브라운시플리처럼 영국 내 비중이 큰 기업과 달리, 애초 패스포팅을 노리고 런던에 터를 잡은 다국적 금융사는 이미 유럽 본토로 인력과 자산을 움직이고 있다. 지난 7일 회계법인 언스트 앤 영(EY)이 조사한 영국 금융기업 222개 가운데, 영국 내 자산을 옮기겠다고 공표한 기업은 20개, 자산 규모는 8,770억유로(약 1조달러)로 추산된다. 인력 7,000여명도 유럽 대륙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런던의 위상을 이어받고자 다투는 유럽 도시 간 경쟁도 치열하다. 도이체방크와 JP모건 등 대형 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프랑스 파리로 이동한다. CME그룹 등 거래소 운영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자산운용사는 아일랜드 더블린을 선호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세계 금융강국의 금융서비스순수출 규모/ 강준구 기자/2019-01-27(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세계 금융강국의 금융서비스순수출 규모/ 강준구 기자/2019-01-27(한국일보)

 ◇”그래도 역시 런던” 반론도 

하지만 오랜 기간 ‘국제금융 생태계’를 주도해 온 런던의 힘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우선 영국 자체가 명목 경제성장률로 세계 5위권인 대형 시장이다.

여기에 국제 공용어인 영어가 사용되고, 중요 금융 관련 법률과 규정도 대부분 영어로 쓰여 있다는 점, 금융인과 가족이 누릴 수 있는 런던의 교육ㆍ문화 수준이 높다는 점도 무시 못할 장점이다. 또 금융사가 유럽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을 고려한다면, 패스포팅이 필요 없는 영역과 관련된 업무는 굳이 유럽 대륙으로 옮길 유인이 낮다. 영국을 이탈한 금융사가 유럽 대신 뉴욕 월가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

유럽 대륙에서도 노 딜 혼란을 막기 위해 제한적으로나마 패스포팅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국제 로펌 클리퍼드찬스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지난해 말 영국 은행 및 투자사의 패스포팅 권한을 일시 인정하는 법률을 도입했다. 브렉시트 이전의 기존 거래를 연장했거나 생애주기에 연관된 계약에만 국한돼 있지만, 금융사가 유럽으로 이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EU 시민권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셈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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