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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유연해져야 자영업자 양산 막는다

입력
2019.02.14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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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영업, 한국 경제 늪이 되다] <4> 임금근로자 확대가 답이다 

 일각 “유연화 역효과” 우려에도, 전문가 “경직성 탈피해 고용 늘려야” 

 중고령자 구조조정 줄이려면 ‘호봉급→직무급’ 임금체계 개편 시급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49.1세.’

우리나라 근로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을 한국고용정보원이 2017년 추산한 결과다. 20대 후반~30대 초반까지 교육을 받지만 막상 노동시장에 진입하면 50세도 채 못 되어 중심부 일자리에서 밀려 나간다는 뜻이다. 대다수 유럽국가의 주된 일자리 은퇴 연령(60대 초반ㆍ산업은행 추정)과 비교하면 10년 이상 빠른 나이다. 이렇게 회사를 떠나 손에 쥔 퇴직금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자영업 이외에 많지 않다. 한국의 자영업 시장이 퇴직자들이 차린 치킨집, 편의점, 카페 등으로 극심한 레드오션을 이루는 이유 중 하나다.

중심부 일자리에서도 밀려 나간 퇴직자들이 다시 임금 근로자가 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부족한 일자리 때문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조기 은퇴자는 넘쳐나지만, 일자리 창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제조업 일자리는 늘지 않고 있다. 크게는 두 가지 층위로 해법이 제시된다. 먼저 괜찮은 일자리인 중심부 일자리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등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자는, 거시적 해법이다.

중심부 일자리의 경직성이 일자리 창출을 막는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이동을 유연하게 해 기업들의 고용을 늘리자는 입장이다. 쉬운 해고를 포함한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번 해고되면 재취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나라 노동시장 경직성이 너무 큰 상황”이라며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해야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그래야 전체적인 고용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심부의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한계가 있는 이상 저임금 일자리라도 많이 만들어 노동시장에서 쫓겨 나오는 중고령 퇴직자들을 자영업에 내몰리지 않게 하고 노동시장에 끌어안자는 논리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자가 자신의 생산성이 높았던 시기가 지난 뒤에는 눈을 낮춰서 비정규직 등 다양한 형태로 취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사람들이 비정규직 취업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데다, 각종 비정규직 사용 제한 규제로 괜찮은 비정규직 일자리도 별로 없다”고 상황을 진단한 뒤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노동시장을 규제하면 이 같은 일자리 부족이라는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취약계층은 복지제도로 보호하고, 비정규직 규제를 푸는 등 노동시장이 좀 더 유연성을 확보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_김경진기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_김경진기자

물론 반론도 나온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적으로는 다른 나라보다 해고가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10%대 낮은 노조 조직률 등 기업이 원하면 언제든 해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시장이 이미 유연화 돼있다”면서 “이런 여건에서 해고를 더 쉽게 하면 되레 자영업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어쨌든 노동시장 유연화는 대규모 고용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극약 처방’에 가까운 만큼 기업이 중ㆍ고령층을 좋은 일자리에 오랫동안 고용할 수 있도록 임금ㆍ인사체계를 개편하는 조치를 선행해야 한다는 해법도 공감대를 얻고 있다. 기업이 중고령자의 조기해고나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덜 느끼도록 임금ㆍ직무 체계와 관련한 유연성을 높이는 개혁이 노동시장 유연화보다 앞서야 한다는 얘기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미래인재본부장은 우리나라에 조기 퇴직이 많은 원인에 대해 “중고령 근로자들이 임금 대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회사의 판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고도성장 시기 도입돼 능력이나 하는 일과 무관하게 회사에 다닌 근속 기간이 길면 길수록 기본급을 더 주는 호봉급이 여전히 다수인 중고령 근로자들은 회사 입장에서 임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중심부 일자리로 불리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300인 이상 기업 중 170곳(근로자 39만여명)을 조사한 결과 호봉급을 적용하는 근로자 비율이 51.2%에 달했다. 숙련도 등 업무수행 능력 단위에 따라 기본급이 결정되는 직능급은 36.2%, 직무의 중요성과 난이도에 따라 기본급을 받는 직무급 적용 근로자는 4.4%에 그쳤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호봉급 같은 연공형 임금체계에서는 근로자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리가 적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를 이룰 수밖에 없어, 중고령 근로자가 오래 머물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고령 근로자들의 낮은 생산성은 기업이 이들을 고용할 유인을 떨어뜨린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성인역량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20대 후반까지는 핵심정보처리 능력을 비롯한 ‘언어능력’이 OECD 평균을 웃돌지만 30대 초반을 기점으로 능력이 급감해 OECD 평균을 하회한다. 채창균 본부장은 “대학 가기 직전까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재교육을 받지 않으니 다른 나라와 비교해 나이가 들수록 근로자의 생산성이 더 급격히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스페셜리스트’(특정 분야 전문가)보다는 ‘제너럴리스트’(넓은 분야를 두루 아는 사람)를 키우는 조직 문화도 숙련도를 떨어뜨려 생산성을 낮추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원 개인의 전문성을 살리기보다 순환보직으로 돌리면서 제너럴리스트로 키우면, 근로자의 나이가 들수록 호봉제로 봉급만 오르고 전문성은 떨어져 회사가 데리고 있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아닌 ‘일의 내용’에 따라 기본급을 지급하는 직무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과 교육훈련 강화, 그리고 중고령 숙련 근로자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지적 사항이다.

이중 임금체계 개편은 기존 근로자의 저항이 있고 개별 기업이 손 대기 어려워 오랫동안 방치됐던 분야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센신터 소장은 “국내에서 직무급을 도입했다고 홍보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호봉급에 직무급 성격을 일부 가미한 수준”이라며 “진정한 의미에서 직무급을 하려면 직무 분석과 직무 평가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시장임금 조사를 거쳐 다른 기업의 동종 직무와 비슷한 임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전 산업적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업종별로, 직무별로 세분화한 시장 임금을 공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병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는 “우리처럼 연공형 임금체계를 유지하던 일본도 호봉급을 직무급으로 바꾸는 데 20~30년이 걸렸다”면서 “공공부문부터 직무급제를 시도해 보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직무 중심형 전환을 위해 기업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 내 부하직원으로 있던 사람을 상사로 모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채 출신만 챙기면 안 되고, 다른 기업에서 오는 사람을 격의 없이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김동원 교수)는 제안도 나온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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