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16> 바우처택시 활성화 위해선 인식개선 필요
지난달 한 모임에서 ‘버럭중사’로 알려진 장애인식개선 강사 이원준씨로부터 강연을 들었다. 군 생활 당시 뭐든 열심히 해 ‘버럭중사’라는 별명을 얻으며 육군 부사관으로 빠르게 진급했던 이씨는 산악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해 목 위로만 움직일 수 있는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비율이 전체 장애인의 88.9%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이야기는 먼 나라 남의 일이 아닌, 얼마든지 나와 내 주변의 일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발달장애인의 삶과는 또 다른 척수장애인의 삶. 지적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발달장애인의 삶에 관해선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다른 유형의 장애가 있는 이들은 또 다른 고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애인콜택시, 오늘 부르면 내일 도착
그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이들은 모두 강연이 끝난 후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시간 정도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집에 갈 시간이다. 모두는 나갈 채비를 하면서 서로에게 물었다. “지하철로 가세요? 버스 타세요? 아니면 택시 타세요?”
방향이 같은 이들끼리 함께 가자며 옷가지를 챙기다 이씨와 동석한 또 다른 척수장애인에게 장애인콜택시(이하 장콜)를 불렀냐고 묻자 진작 호출을 했다고 답한다. 자리를 뜨려던 사람들이 “그럼 장콜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다”고 하자 두 사람 모두 손사래를 친다.
“어디 가서 장콜 올 때까지 기다려주겠다고 말하지 마세요. 처음엔 웃으며 기다리다 나중엔 화내요. 인간관계 어그러지는 지름길입니다.”
장콜의 대기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이유였다. 이원준씨는 한두 시간 기다리는 일은 기본이요, 6시간까지 기다려 봤다며 웃는다.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다.
이날도 나는 자정 전에 집에 도착해 씻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 단톡방을 보니 장콜을 타고 간 두 명 모두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고 알린다. ‘오늘 부르면 내일 집에 도착하는 게 장콜’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답은 쉽게 나온다. 이용자는 많은데 택시 수가 적다. 법적으로 장콜을 이용할 수 있는 1급과 2급의 중증장애인 수는 42만명이다. 하지만 지자체에 따라 조례가 달라 모든 중증장애인이 장콜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례로 서울시의 경우 발달장애 영역에서 자폐성장애는 1급과 2급 모두 장콜을 이용할 수 있지만 지적장애는 1급까지만 이용대상자가 된다. 지적장애 2급인 아들은 장콜을 이용할 수 없어 매일 일반택시를 타고 하교를 한다.
장콜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해 도입되었다.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큰 차체의 특별한 택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건 휠체어에 탄 장애인만이 아니다 보니 장콜 이용대상자는 전 장애 유형으로 확대되었다.
문제는 택시 숫자다. 전국의 장콜 수는 3,146대다. 법정 기준(이용 대상자 200명 당 1대ㆍ약 2,100대)은 넘지만 실제로는 이용이 쉽지 않다. 이원준씨가 6시간이나 대기를 한 점을 보면 법정 기준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인지 알 수 있다. 장콜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누군가는 몇 시간의 기다림을 감내하고서라도 장콜을 타야만 한다. 그래야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이동을 할 수 있다.
서울시, 바우처 택시 5만대 도입키로
장콜 숫자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휠체어 장애인(지체, 척수, 뇌병변 장애인 등)과 비휠체어 장애인이 같은 장콜을 이용한다는 것도 휠체어 장애인의 이동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아들이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엄마인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그 때마다 치료가 끝났는데도 집에 가지 않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를 보게 된다. 집에 가기 싫어 안 가는 게 아니라 장콜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치료는 진작 끝났는데 차가 올 때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며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이다.
장콜이 필요한 건 휠체어에 탄 장애인만이 아니다. 감각의 예민함이 큰 일부 발달장애인의 경우 택시가 아니면 안 되는 이들이 있다. 시각장애인이나 내부장기장애인 등 또 다른 장애 유형에서도 택시가 절실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휠체어에 타지는 않지만 엄연한 장콜 이용대상자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는 굳이 장콜이 아니어도 된다. 장콜의 기능을 대신할 다른 택시여도 괜찮은 것이다. 이원준씨같은 척수장애인은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큰 차체의 장콜이어야만 하지만, 우리 아들과 같은 발달장애인은 장콜이든 아니든 이동수단이 ‘택시’라는 게 중요하다.
그 지점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하면 해답이 보인다. 아마 서울시도 그랬나 보다. 서울시는 기존 일부 시각장애인과 신장장애인을 위해 운영해 오던 바우처택시를 올 4월부터 전 장애 유형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비휠체어 장애인의 택시 이용을 바우처택시가 수용함으로써 휠체어 장애인이 장콜 이용을 수월하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렇다면 바우처택시란 무엇인가. 비장애인이 사용하던 각종 콜택시를 장애인이 장콜처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여러 곳의 콜택시 업체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 이용대상자는 장콜 대신 그 택시들을 이용하면 된다. 택시 요금의 65%는 서울시에서 지원한다. 그렇게 되면 택시가 필요한 비휠체어 장애인은 바우처택시를 이용하면서 기존의 장콜과 비슷한 이동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에 서울시는 바우처택시 이용자를 만 명으로 확대하고, 바우처 택시 수는 5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하에 열심히 사업을 준비 중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지적장애 2급인 우리 아들까지 혜택을 받는 건 아니다. 기존의 장콜 이용 대상자가 바우처택시 대상자가 된다.
전국에 장콜이 3,146대에 불과한데 서울시의 바우처 택시가 5만대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적어도 서울에서는 장애인이 이동 한 번 하기 위해 택시를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는 얘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 선행돼야
바우처택시가 확대 운영된다는 소식은 기쁜 일이고 잘된 일이다. 비록 내 아들은 혜택을 못 받지만 내 아들의 장애가 존중 받는 사회가 되려면 다른 이들의 장애도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모두의 장애가 존중받는 방향으로 나가야 발달장애인인 내 아들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
바우처택시로 인해 장애인 이동권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 같은 기대감이 있지만 그러는 한편 이번 사업이 ‘장애인주치의 사업’처럼 실패한 시범사업으로 끝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있다.
얼마 전 혼자서 택시를 탔을 때 기사에게 물었다. 서울시에서 이런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기사님이라면 바우처 콜이 왔을 때 응답하겠냐고 물었다. “그래선 안 되는 걸 알긴 아는데, 그래도 나는 응답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왜 그러냐 물으니 장애인을 태우는 건 무섭다고 한다. “운전 중에 어떤 일을 벌일지 어떻게 아느냐”고도 한다. 운전석에 투명 보호막이라도 달아주지 않는 한 콜에 응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랬다. 제도는 위에서 만들지만 그 제도를 실행에 옮기는 건 결국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들 개개인이다. ‘장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보가 대중에 확산되는 게 중요한 이유다. 그래야만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오해도 사라진다.
서울시에서는 MOU를 맺는 택시 업체 등에 장애인식 보수교육을 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몇 시간 강의를 듣는다고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장애인식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아는 터라 이번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바우처택시가 성공하는 길? 장애가 있는 누구라도 원하는 시간에 기다리지 않고 택시를 탈 수 있는 방법? 제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식의 변화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제도가 성공한다. 이젠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 봐야 할 시점이다.
류승연ㆍ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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