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산업 부흥을 도모하려 했던 미국 맥주 회사들의 의기투합이 한 순간에 깨질 위기에 처했다. 동맹에 참여했던 한 업체의 ‘옥수수 시럽 사용’을 세계 최대 맥주 그룹 AB인베브(이하 인베브)가 슈퍼볼 광고에서 걸고 넘어진 탓이다. 맥주 제조 과정에서 감미료로 사용되곤 하는 고과당의 옥수수 시럽은 비만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미국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쟁만 하던 주요 맥주 기업들이 모처럼 한데 뭉쳐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했으나, 도발적 광고 한편이 업계의 공동 캠페인을 망쳐 버린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버드와이저’ ‘코로나’ 등의 맥주 브랜드를 소유한 인베브가 ‘블루문’으로 유명한 몰슨쿠어스사(社)에 시비를 걸어 판이 깨졌다고 전했다. 본래 인베브와 몰슨쿠어스, 하이네켄, 컨스텔레이션 브랜드 등 네 곳은 수백만달러 규모의 공동 캠페인을 열 예정이었다.
인베브는 이달 초 ‘2019년 슈퍼볼’에서 몰슨쿠어스의 맥주가 옥수수 시럽을 쓴다는 점을 강조하는 광고를 냈다. 영화 ‘반지의 제왕’ 같은 중세 판타지 왕국을 배경으로 한 이 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인베브가 제조하는 맥주 이름을 딴 ‘버드라이트 성(城)’에 시럽이 잘못 배송된다. 왕이 “우리 것이 아닌데? 우리는 시럽 안 쓰잖아?”라고 묻자, 부하 장군은 “밀러라이트는 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맥주원정대가 몰슨쿠어스 제품명을 붙인 ‘밀러라이트 성’과 ‘쿨스라이트 성’에 옥수수 시럽을 배달하는 여정이 한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발끈한 몰슨쿠어스의 미국 자회사 밀러쿠어스는 “다음달 공동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면서 공동 캠페인 중단 의사를 밝혔다. 이후 트위터와 전면광고 등을 통해 “우리 회사는 저과당 시럽만 쓰고 있으며, 완제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발효 단계에서만 사용한다”라고도 해명했다.
밀러쿠어스 홍보 담당인 피트 마리노는 공동 캠페인에 대해 “시간과 돈 낭비일 뿐”이라고 회의감을 드러냈다. 인베브의 광고에 대해서도 “산업 전반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인베브는 문제의 광고에 대해 “사실일 뿐이고, 소비자들이 어떤 맥주를 마실지 결정할 때 필요한 정보라고 본다”고 맞서고 있다. 이번 공동 캠페인 광고는 와인을 마시는 매력적인 여성, 마티니를 마시는 제임스 본드(007영화의 주인공), 자신의 집 주방에서 맥주를 마시는 노인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맥주는 번창해야 하는데도 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미국 맥주 시장은 지난 20여년간 내리막길을 걸어 왔다. WSJ에 따르면 미국 주류 시장에서 맥주의 점유율은 1999년 56%에서 지난해 45.5%으로 10%포인트나 줄어든 반면, 진ㆍ위스키 같은 증류주는 동기간 28.2%에서 37.2%로 증가하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게다가 미국 젊은층의 주류 소비량은 갈수록 줄고, 소규모 양조장이 뜨면서 대형 맥주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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