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국회의원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대개 귀결은 이것이다.
“억울하면 집권해야지.”
청와대나 여당을 향한 불만을 쏟아 내다가도 “그것이 권력의 속성인 걸 어쩌겠느냐”는 자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 설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집권을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여당의 수석대변인에게서 ‘영향력도 없는 미니정당’ 소리를 들은 야권의 소수정당 의원들도 이번에 이 말을 또 한 번 내뱉었을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 수석대변인은 27일 “저는 (원내) 1당의 수석대변인”이라며, “소수정당의 사람과는 자꾸 엮이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까지 했다. 술자리도 아닌 ‘수석대변인’ 직함을 걸고 인터뷰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랬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보수언론에 “나치 때도 보기 힘든 쓰레기 기사”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의 설화는 이뿐이 아니다. 6년 전인 2013년 초선이자 원내대변인을 맡던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뜻하는 귀태(鬼胎), 박근혜 전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이라고 해 물의를 빚었다. 결국 그는 이 말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변인 직에서 사퇴했다.
1년 뒤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가정사 논란과 관련한 보수신문의 보도를 두고 “히틀러의 나찌(나치) 정권이나 북한과 같은 독재 권력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쓰레기 기사’”라고 일컫기도 했다.
수석대변인이 되고 나서도 과격한 발언으로 심심찮게 입길에 올랐다. 지난 달에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특감반원과 청와대가 KT&G 인사와 적자국채 발행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꼴뚜기’와 ‘망둥이’에 빗대기도 했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것이다. 지난해엔 이른바 ‘드루킹 특검법’을 놓고 여야 협상이 결렬돼 국회 파행사태가 지속되자 “국회를 해산하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내놨다.
대부분 비판할 만한 사안이긴 했는데도 홍 수석대변인이 도를 넘은 비난이나 비유를 하는 바람에 되레 욕을 먹은 경우다.
◇아직 야성이 남은 탓?
일각에서는 ‘여당은 처음이라’ 야성이 아직 남은 탓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정부 여당의 실정을 감시하고 견제, 비판해 대안세력임을 증명해 집권하는 것이 목표인 야당 시절에는 그럴 수 있다. 현행 대통령제 하에서는 야당의원은 힘이 없기에 내세울 건 오로지 ‘입’이라는 우스갯말도 있다. 강경 발언으로 주목을 받아 인지도를 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집권을 못하더라도 배지는 다시 달 수 있으니 말이다.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인 하태경 의원을 향해 홍 수석대변인은 “(영향력 없는 정당 소속이라) 자꾸 정치적 논란을 만들어서 몸값을 올리려고 하는데 정치,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훈수를 뒀다. 누구에게 할 말이냐는 지적이 나올 법 한 대목이다.
홍 수석대변인의 이번 ‘소수정당’ 발언은 이전 같은 단순한 ‘막말’ 혹은 ‘설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집권여당의 ‘입’이라고 불리는 그의 당직, 재선 의원이라는 무게감, 원내 다수당이라는 그가 입은 옷들 때문이다.
◇국회의원 입에 따르는 책임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치며, 20대 국회는 흔치 않은 다당제 구조로 개편됐다. 여당인 민주당이 128석, 야권은 자유한국당 113석, 바른미래당 29석,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5석 순이다. 어느 정당도 일반적인 법안 처리에 필요한 의결 정족수인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사안마다 정당들이 합종연횡 해 온 이유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거세게 대립하는 사안일수록 소수당의 태도가 중요해진 것도 그래서다. 숫자에서는 밀릴지 몰라도 때로는 캐스팅보트를 이들이 쥔다.
민주주의의 기본 운영 원리를 이제야 국회가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거대 양당만 존재해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수를 맛볼 수가 없다.
더구나 지금처럼 사안마다 국민의 견해 역시 다층, 다원화한 시대에는 다당제 구조를 안착시켜 다양한 여론을 국회가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부터 소수정당들이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 수석대변인의 한 마디에선 그러나 집권여당 의원으로서 우월의식에, 선거제도 개편에 부정적인 견해까지 엿보인다. 여야 5당은 지난해 12월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을 1월말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최종 합의 도출 역시 소수정당들의 요구에도 진척이 없다. 합의를 지키고 싶다면 이 시기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특히나 여당에게 소수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국회의원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그가 입은 공직의 무게만큼 책임 역시 더욱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홍 수석대변인은 2012년 총선 때 단 488표 차로 당선됐다. 서울에서 가장 적은 표차였다. 그때 가슴을 쓸어 내리고 환호하며 가졌던 초심에 이런 설화를 이어가고 싶다는 뜻은 없었을 것이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