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 경질을 염두에 두고 최근 감사를 벌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베트남 현지 진출 기업과 교민은 물론 베트남 정부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파격적인 업무 스타일로 부하 직원에 대한 폭언 등이 빌미가 됐지만, 과거와 달리 한국 기업과 국민 권익 보호에 적극적인 공관장이 부처 내 파벌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25일 호찌민 한국상공인연합회(코참) 김흥수 회장은 “김 대사는 어느 외교관도 보여주지 못한 업무 추진력을 발휘,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과 교민들의 권익이 상당히 높아졌다”며 “그 같은 공(功)을 배제한 채 이뤄진 감사와 후속조치는 국익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은 “공무원들이 민간 출신 대사의 업무 스타일에 부담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번 사건이 무사안일주의의 공무원 사회를 변화로 이끄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근무 당시에도 높은 성과를 냈던 김 대사는 부임 이후 고강도 업무 지시와 함께 직설적인 언행, 파격적인 행보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특히 지난해 말 공식 석상 연설을 통역 없이 베트남어로 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베트남 청중들이 김 대사의 베트남어를 알아듣지 못해 일부 대목에서는 통역이 김 대사의 베트남어를 다시 베트남어로 ‘통역’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 측에서는 6성조의 베트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김 대사를 더욱 반겼다. 베트남 외교가 관계자는 “우리보다 선진국인 한국에서 파견된 대사가 베트남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고 전했다.
베트남 주재 타국(동북아) 대사관 관계자는 “주재국 외교관이 현지 언어로 관계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일반적”이라면서도 “베트남어가 쉽지 않은데, 부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인 김 대사는 외교부를 떠난 뒤 삼성전자 임원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와의 사업을 총괄하다가 지난해 5월 초 베트남 주재 대사로 부임했다. 김 대사는 베트남 고위 관료와 기업인들과의 소통에서 영어는 물론 러시아, 베트남어를 이용, 짧은 시간에 깊은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적 외교관의 모습과 행동 양식에서 벗어난 김 대사의 모습에 평가는 엇갈리지만, 현지 진출 기업들 사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민간 출신으로서 기업 고충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여느 외교관과는 차별화 된다는 평가다. 관계 장관, 기관장은 물론 베트남 대기업 오너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관련 한국 기업인들을 대동해 힘을 실어주는 게 대표적이다. 베트남상공회의소(VCCI) 부 티엔 록 회장은 “역동적인 대사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 촉진을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며 “한국 뿐만 아니라 베트남 기업에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H기업 관계자는 “그 덕에 다른 나라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도움 받은 철강, 금융, 자동차산업 관련 기업이 한 둘이 아니다”고 전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대사가 재벌들과의 만남이나 주선해야 되겠느냐, 특정 업체 편의 봐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 외에도 한국 법무부 등을 상대로 한 설득전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에 대한 복수 비자 발급 조건 완화를 관철시킨 것도 공으로 거론된다. 신원이 확실한 베트남 정부, 기업 등의 고위 인사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까다로운 비자 발급 조건을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과 함께 각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국내 민간 단체들은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특히 한국 비자 발급 조건 완화를 통해 한국에 대한 베트남 고위층들의 인식 개선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지 공관 관계자는 “수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일이었는데, 김 대사가 밀어붙이면서 나온 성과”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기간(현행 15일) 확대와 출국 이후 30일 이후 입국이 가능한 ‘경과규정’ 폐지를 앞두고 있다.
외교부가 지적한 갑질ㆍ폭언 논란도 단기간 고성과를 올리는 과정에서 나왔다. 과거 타성에 젖어 관료주의 행태를 보인 하위직 외교관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은 삼성 직원처럼 하고, 월급은 공무원 월급을 받는다”는 하소연이 대사관 직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전직 공관 관계자는 “밥도 베트남 관계 기관과 먹어라, 베트남 사람들과 네트워킹해라는 주문이 끊이질 않았다”며 “대사 업무 지시를 다 소화하자면 밥도 편하게 앉아서 먹을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각 부처 주재관들 사이서 베트남은 희망 근무지였지만, 김 대사 이후 기피 근무지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김 대사는 과거 인터뷰에서 “나는 자리를 바꿔가며 저녁을 2, 3번 먹는다”고 밝힌 바 있다.
특임 공관장으로서 지난해 5월 부임 이후 이룬 적지 않은 성과와 함께 이 같은 내부 반발이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특임 공관장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필요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민간에서 발탁한 인사를 특별히 임명하는 자리인 만큼 공관장과 함께 그를 보좌할 별도의 ‘팀’을 파견하든지, 직접 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직 한 공관장은 “많은 부처들이 여전히 순혈주의로 흐르고 있고, 외부 발탁 인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임 공관장 제도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일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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