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의 블랙리스트와 차원 달라
공공기관 임원 임기 “2년 이내로”
여야의 초당적 법률 수정 필요
이제 “대통령 못 하겠다”, “장관 안 하겠다”는 말이 더 늘게 생겼다. 신상이 탈탈 털려가면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장관을 가르치려드는 관료들이 버티고 있고, 전 정권이 임명해둔 공공기관의 장과 임원을 교체하다간 직권남용에 업무방해로 기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과거가 아니라 현 정부 장관 출신인데 산하기관 임원의 교체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구속영장을 받았고 실질심사까지 갔다. 이 일은 과거 새로 정부가 들어서면 항상 반복되었던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과거 정권 초기 공공기관 임원 교체와 비교해야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 이 일은 전 정권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와 차원이 다르다. 후자는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가 승마계를 주무르다가 시작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7월 23일 국무회의에서 느닷없이 체육계 비리를 바로 잡으라고 말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이후 대한체육회 산하 2,099개 단체를 특별감사했다. 당시 책임자인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이 초기에 교체되었는데 그 이유가 최순실에 대하여 사실대로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두 사람을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찍어서 경질시켰다. 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블랙리스트는 민간 예술인들이 활동하는데 정부지원을 막아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데 쓰였다.
김 전 장관에 대한 법원의 향후 재판결과는 미래의 정부 인사권과 감찰권까지 좌우하게 될 것이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권 교체 후 전 정권에서 임명받은 공공기관의 임원이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기본적인 소양이고 자세다. 그 누구보다 자신이 그 자리에 왜, 그리고 어떻게 임명된 것인지 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끝까지 버티는 것은 자신이 전문가보다는 생계형이라는 점을 웅변하는 셈이다. 게다가 기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쓰다가 감사원의 주목을 끌고 임기까지 다 마친 뒤에 마치 새 정부가 찍어서 몰아냈다고 소문내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래서 개인의 양식에 맡기지 못하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진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제28조 임기조항에서 기관장 3년과 이사, 감사의 2년 임기를 모두 “2년 이내”로 바꿔야 한다. 법률에 “기관장의 임기는 3년으로” 되어 마치 3년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긴 공모과정까지 거치고 기관장이 3년을 일하다보면 바로 대통령의 임기말이다. 만약 임기를 2년 이내로 바꾼다면 성과에 따라 임기를 탄력적으로 할 수 있고 대통령의 임기에 2명 정도의 임원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서로 경쟁도 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법률 제31조 기관장과의 계약도 보완할 수 있다. 이 계약은 이사회와 기관장 사이에 형성되는 것인데 임명권자가 임기를 종료할 경우 기관장의 임기도 종료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을 포함시키게 바뀌어야 한다.
사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더 심각하다. 지방공기업법 제59조에 의하면 “사장, 이사 및 감사의 임기는 3년으로...임기가 만료된 임원으로 하여금 그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하게 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가 4년인데 선거에 승리한 뒤 새 임원을 임명하기까지 긴 시간이 들고 3년 임기까지 보장하면 그 뒤 새 임원을 뽑는다는 것은 단체장 임기말에 알박기하는 격이다. 따라서 이것도 2년 이내로 바꿔야 한다.
현재 공공기관이나 지방공기업의 임원을 해임하는 절차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까다롭게 법률로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찍어내기니 낙하산 인사니 직권남용에 업무방해 시비까지 생겼다. 따라서 아예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과 지방공기업법의 임기조항을 수정해야 한다. 언젠가 정권이 교체되고 여야의 공수가 바뀔 것이다. 이제 국회가 초당적으로 대통령, 장관, 자치단제장이 더 직권남용 시비에 빠지지 않고 일하게 법을 바꿔주어야 할 시점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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