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해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집단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탈레반 통치지역에서 여성은 부르카로 얼굴을 완전히 가려야 외출이 가능했고,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것도 금지됐다. 물론 2001년 미군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뒤 여성 권익이 크게 신장되긴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탈레반이 아프간 평화협상을 이어가면서 이 나라 여성들은 ‘탈레반이 권력을 다시 쥐면 그 동안의 성취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랬던 탈레반이 ‘여권 신장’을 향한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주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프간 평화협상 회담과 관련, 탈레반 대표단에 여성들도 사상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17년 넘게 지속된 아프간전쟁의 종식 논의에 ‘탈레반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될지 주목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달 19일부터 21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평화협상에 복수의 여성이 탈레반 대표단 일원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무자히드 대변인은 해당 여성들이 몇 명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등 더 이상의 구체적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그는 “탈레반 고위 지도자들과 가족관계가 아니며, 국내외의 일반적인 아프간인들”이라며 “이슬람 군주국(Islamic Emirateㆍ탈레반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명칭)이 벌여 온 투쟁의 일부이자 지지자들”이라고만 설명했다.
그럼에도 탈레반의 결정은 상당히 유의미하다는 평가다. 현지 시민단체와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아프간 북부 바다흐샨주(州)의 여성 하원의원을 지낸 파우지아 쿠피는 “아프간 여성이 겪었던 고통과 불행은 오직 여성만 느낄 수 있다”며 “탈레반 협상팀에 여성이 포함된다는 건 탈레반의 이데올로기가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진 샤힌 의원도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면 여성의 참여,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며 “분쟁 종식 후 아프간이 경제적 지원을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와 별개로, 이번 평화협상이 실질적 진전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탈레반은 그 동안 아프간 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취급하면서 “정당성 없는 정부와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때문에 아프간 정부가 배제된 채 사실상 미국-탈레반의 양자 협상이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번 회담에는 아프간 정부도 150명 규모의 대표단을 파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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